1995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홈쇼핑. 그 시장 규모는 첫 해 34억 원에서 10년 뒤인 2004년 4조 원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작게는 건강식품부터 크게는 자동차까지 안 파는 것이 없는 TV홈쇼핑에서 전자제품, 그 중에서도 PC와 노트북의 판매는 꾸준히 늘고 있다. ‘홈쇼핑=값싸고 편리하다’는 공식이 무너진 지 오래인 지금, 과연 TV 광고만을 보고 구매한 PC가 제 값을 하고 있을까?
10여 년 전만 해도 홈쇼핑의 입지는 ‘집에서 편리하게’ 정도였다. 방송의 형태 또한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명랑한 성우 아저씨가 20분 내내 “XX가 당신의 삶을 바꿔드립니다! 이 모든 구성이 삼만 팔천 팔백원!”을 외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주로 실생활에서 있으면 편리한 정도의 아이템을 판매했고, 품목도 셀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은 편이었다.
2014년 현재의 TV홈쇼핑은, 두 개의 홈쇼핑 채널만 있으면 동네 슈퍼조차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들을 판다. 의식주와 관련한 모든 것은 기본이다. 속옷부터 코트까지, 쌀부터 각종 반찬과 과일 등의 식재료까지는 물론이고, 미분양 전세 아파트도 간혹 볼 수 있다. 집에서 필요한 각종 가전제품들과 가구들, 심지어 안전을 위한 보험과 사후를 위한 상조 시스템까지 TV 리모콘만으로 살 수 있다. 홈쇼핑 출연 20여 년만의 성과라면 성과다.
이 중 큰 비중으로 판매가 늘고 있는 것이 가전제품,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다. 컴퓨터의 경우 90년대 중반까지는 대기업들이 전체 PC의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용산의 조립PC에 밀린 뒤 현주컴퓨터나 주연테크와 같은 2차 조립PC 업체들이 득세하게 됐다. 이 역시 지금은 유명무실하지만 한 때는 매일 신문의 전면광고를 장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완제품 PC 자체의 인기도 바닥을 쳤고 소비자들도 가격의 거품을 알고 있기에 과거 대비 판매율은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홈쇼핑에서 PC를 구매했다는 말은 곧 ‘나는 컴맹’이나 ‘나는 부자’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다. 그게 부끄럽지 않다면, 홈쇼핑 PC도 그리 나쁘진 않다.
문제는 판매 분야 자체가 아니라 그 구성과 품질이다. 꾸준히 설명해 왔지만, 개별 부품에 대한 정품 증명을 하는 것이 당연한 PC인데 대기업이나 홈쇼핑 제품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CPU조차 별개로 구매할 수 없는 벌크 제품이 많고, 메인보드나 RAM, VGA는 어떤 브랜드인지도 알 수 없다. 간혹 메인보드의 메이커를 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저가형 브랜드를 사용한다. 원가 절감을 위한 선택이겠지만, 소비자는 그 선택을 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빛 좋은 개살구
현재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PC를 살펴보자. A 홈쇼핑에선 대기업 PC나 2차 조립PC 업체의 제품을 모두 판매하고 있다. 이 중 단일 부품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인텔 코어 i3-4130 프로세서를 장착한 대기업 PC 모델을 분석했다. 좌측이 홈쇼핑 판매 모델, 우측이 해당 부품과 가장 가까운 정품 하드웨어다. VGA의 GT635는 단일 구매를 할 수 없는 대기업 OEM 제품이어서 가장 비슷한 사양의 다른 모델을 선택했다.
현재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PC를 살펴보자. A 홈쇼핑에선 대기업 PC나 2차 조립PC 업체의 제품을 모두 판매하고 있다. 이 중 단일 부품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인텔 코어 i3-4130 프로세서를 장착한 대기업 PC 모델을 분석했다. 좌측이 홈쇼핑 판매 모델, 우측이 해당 부품과 가장 가까운 정품 하드웨어다. VGA의 GT635는 단일 구매를 할 수 없는 대기업 OEM 제품이어서 가장 비슷한 사양의 다른 모델을 선택했다.
홈쇼핑 제품의 경우 CPU와 운영체제를 제외한 모든 하드웨어가 브랜드를 알 수 없었다. 이 제품 뿐 아니라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대기업, 조립PC 업체의 PC는 개별 하드웨어의 브랜드를 밝히지 않는다. 또한, 홈쇼핑 제품의 경우 전면포트를 ‘11 in 1’로 소개하며 ‘SD, mini SD*, micro SD*, SDHC, mini SDHC*, micro SDHC*, SDXC, micro SDXC*, SDHC UHS-I, SDXC UHS-I, micro SDXC UHS-I*’를 지원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 표시가 된 항목은 전용 어댑터가 필요하다. 결국 SD카드 슬롯 하나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뿐이다. 1만 원대의 내장형 멀티 리더기를 장착하면 SD카드는 물론 micro-SD, CF 1, 메모리스틱 듀오, eSATA에 보조전원을 지원하는 USB2.0 포트까지 사용할 수 있다.
대기업 제품의 몇 안 되는 장점으로 여겨졌던 A/S 정책도 부실하다. 개별 하드웨어를 따로 관리?적용해야 할 품질보증 기간이 본체를 통틀어 1년에 불과하다. HDD만 해도 WD는 2년의 제한 보증을 지원하고, 메인보드는 무상 2년, 유상 1년을 보증한다. 가장 중요한 두뇌 인텔 CPU는 정품 구매 시 3년의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품 백신 소프트웨어도 2년 동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을 이용하는 것은 흔한 홍보 방식이다. 문제는 그 제품의 퀄리티가 홍보하는 것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것에 있다. 과거 큰 물의를 일으켰던 식품 홈쇼핑 역시 유명인을 앞세워 홍보해 판매량을 올렸지만, 심각하게 부실한 제품 상태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PC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내세우는 것은 ‘인텔’이라는 유명 브랜드 뿐이다. PC는 CPU만으로 작동하지 않는 걸 알아야 한다.
여러 조건들을 비교해 봤을 때 홈쇼핑에서 PC를 구매하는 것의 조립PC 대비 장점은 두 가지 뿐이다. 구매가 간편한 것, 그리고 구입 후 1년간은 A/S 걱정을 더는 것 정도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홈쇼핑 PC의 구매자 대부분이 PC에 대해 잘 모르는 기성세대인 것이다. PC의 구성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라도 했다면, PC와 같은 복합 전자제품을 스펙 변경도 불가능한 홈쇼핑에서 구입하진 않게 된다. 대기업이라는 포장지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한 꺼풀을 벗겨 보면 그것이 ‘좋은 제품’이라기보다 ‘기업에 돈을 벌어주는 제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제조사도 알 수 없는 부품들이 조악하게 모여 있는 PC를, 가능한 가격보다 30% 이상 비싸게 주고 살 이유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어떤 하드웨어의 조합이 좋은지, 어떤 부품이 평가가 좋은지 1시간만 검색을 해 보면 초보자들도 무리 없이 좋은 PC를 적절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A/S 또한 대부분의 조립PC 업체에서 통합 A/S를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 대기업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같은 가격으로 대기업 PC보다 두 배의 성능은 거뜬히 낼 수 있는 것이 조립PC의 매력이란 걸 알면 그런 소리 못 할걸?
smart PC사랑 | 정환용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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