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도 잘 사용했던 PC가 돌연 켜지지 않는다. 가슴이 철렁한 나몰라씨는 본체와 모니터를 이리저리 만져 봤지만 묵묵부답.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여줘도 돌아오는 건 물음표뿐이다. 결국 동네 컴퓨터 수리점에 전화를 한 나씨.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설명하는 아저씨의 말이 한글인지 외계어인지도 모른 채 거금 10만 원의 수리비를 냈다. 나중에 그저 내부의 먼지만 제거했다는 사실을 안 나씨는 결국 뒷목을 붙들고 말았다. 당신도 돈을 아끼고 싶다면 조립PC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배워두기 바란다.
PC는 필수, 성능은 선택
가정과 직장, 관공서까지 PC가 없는 곳이 없다. 그만큼 PC는 우리 생활 속에 없어선 안 될 생활가전 수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PC 사용자들은 ‘조립PC’ 하면 한 걸음 물러서게 마련이다. 널찍한 플라스틱 판 위에 뭐가 그리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 또 연결해야 할 케이블과 기계들은 왜 이리 많은지... 한 번쯤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막상 쇼핑몰에서 잠시 제품들을 보다 보면 왠지 주눅이 들어 조립이 끝난 일반 PC를 사게 된다.
100만 원짜리 브랜드 PC보다 80만 원짜리 조립 PC가 더 큰 기회비용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GTX760이 장착된 PC는 오버스펙일 뿐이고, 프로게이머보다 더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저렴한 브랜드 PC는 쓸데없는 낭비일 뿐이다.
그냥 노트북을 사는 게 어때요♡
차라리 데스크톱을 겸할 수 있는 노트북이 브랜드 PC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같은 가격의 데스크톱에 비해 성능은 뒤처지지만 ‘휴대성’이라는 큰 메리트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자와 같은 IT 마니아들에게 컴퓨터는 전자레인지나 오븐처럼 한 대만 있어도 되는 단일 가전제품이 아니다. 고성능 게임용 데스크톱, 외부 업무용 노트북, 여가용 태블릿 등 종류별로 한 대 쯤은 사용해 줘야 진정한 마니아 아니겠는가.(물론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하나만으로 PC 사용 용도를 만족하기엔 충분하다)
항상 언급하는 말이지만, 자신이 사용할 PC는 한 번쯤은 스스로 조립에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학생이면 한 과목 시험공부 하는 정도, 직장인이면 며칠 걸리는 업무를 처리하는 정도면 배우기에 충분하다. 한 일주일 정도만 틈틈이 배우면 된다.
기자가 조립 PC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본 기사와 상통한다. 멋모르고 그저 컴퓨터를 가지고 싶었던 고교 시절, PC를 사달라는 조름에 지친 부모님께서 (정말 안타깝게도) 홈쇼핑 광고를 보고 ‘지른’ 컴퓨터가 기폭제가 됐다. 분명 친구의 것보다 비싸게 샀는데, 성능이나 HDD의 용량은 더 낮았다. 알고 보니 당시엔 쉽지 않았던 용산 나들이로 CPU를 비롯한 하드웨어를 구입해 며칠을 공부해가며 조립했다는 것. 결국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긴 PC는 요단강을 건넜고, 기자는 이를 갈며 PC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애먼 컴퓨터에 성질을 부리지 말고, 남는 열정을 조금만 PC 공부에 쏟아 보자. 하다못해 직접 조립하지 않더라도, 어떤 부품이 어떻게 조립되는지를 알고 제대로 된 가격대와 그에 알맞은 조합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초심으로 돌아가, PC의 용도와 그에 따른 제품의 필요 성능을 맞춰보자. CPU와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등 3~4가지 하드웨어의 매치업이 가능하다면 조립 PC 한 대 주문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CPU ? 게임 or 웹서핑
컴퓨터의 두뇌인 CPU는 선택의 폭이 가장 넓다. 또한, CPU와 메인보드의 조합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하드웨어이기도 하다. 현재 데스크톱 CPU는 인텔과 AMD로 양분돼 있고, 그 중 인텔 프로세서의 비중이 90% 이상이다. 현재 4세대 ‘하스웰 리프레시’ 프로세서가 메인 라인업으로 올라 있고, 크게 I 시리즈, 펜티엄 시리즈, 셀러론 시리즈 등으로 구분된다. 같은 하스웰 리프레시 프로세서 내에선 CPU의 소켓 숫자가 1150개로 동일하고, 준전문가 영역인 E 시리즈로 넘어가면 소켓은 2011개가 된다. 우리는 일반적 용도의 PC를 목표로 하기에 E 시리즈는 배제해도 좋다.
여기서 사용자가 결정할 것은 PC의 용도다. (당연히 게임은 무조건 포함이겠지만) 게임을 많이 한다면 대체로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i5 시리즈 이상으로 기본 성능이 높은 프로세서를 선택하는 것과, CPU의 성능을 낮추고 대신 그래픽카드에 좀 더 투자하는 것이 있다. 기자가 지난 7월에 조립한 속칭 ‘변태 PC’는 제온 E3-1230V3 프로세서와 GTX750Ti의 조합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면 끝없이 길어질 수 있으니, 게임이 주 목적이라면 낮게는 i5-4690, 높게는 i7-4790K를 권한다. 단, i7-4790K는 본 기사를 읽지 않고도 어떤 제품인지 아는 사람에게 권장하고, 잘 모른다면 권장하지 않는다. 업무나 웹서핑이 대부분이라면 펜티엄 G3420이나 i3-4130을 각 추천한다. 전 제품의 소켓은 동일하니 CPU 선택에 따라 메인보드까지 교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단, i7-4790K만은 다른 칩셋의 메인보드를 사용해야 하니, 아래의 메인보드 항목을 참조하자.
메인보드 ? 오버클럭 and 크기
널찍한 플라스틱 판처럼 생긴 메인보드는 ‘마더보드’라고도 불린다. CPU를 비롯해 모든 하드웨어를 장착하는 ‘엄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아이고 따뜻하여라) 인텔 메인보드의 경우 크게 세 자리 단위로 구분된다. 알파벳 한 자와 숫자 두 자리로 이뤄지는 칩셋 분류는 하스웰 리프레시 기준으로 Z/H/B ? 8/9 ? 5/7 로 나눌 수 있다. 현재 하스웰 리프레시를 장착할 수 있는 메인보드 칩셋은 크게 B85, H81, H87, H97, Z97 등 5종이다. 이 중 i5-4690 프로세서와 가장 많이 조합하는 칩셋은 H97이다. CPU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오버클럭을 염두에 두지 않고, 크기에 따라 가장 많은 제품군이 나오고 있다.
앞서 추천한 CPU 중 펜티엄과 i7-4790K를 제외하면 원하는 폼팩터의 H97 칩셋을 선택하면 된다. 작은 케이스를 원한다면 가로 17cm의 mini-iTX를, 일반 크기도 괜찮다면 24cm의 일반ATX 폼팩터를 고르자. 펜티엄 G3420은 저렴한 가격에서 낼 수 있는 성능을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B85 칩셋 메인보드와 조합하면 된다. 크기는 칩셋 뒤에 M이 붙은 마이크로ATX 이하의 크기가 적절하다. 그리고 i7-4790K는 처음부터 오버클럭을 염두에 두는 CPU이기 때문에 오버클럭에 적합한 Z97 칩셋 메인보드를 권한다. 아니, Z97 외의 제품과의 조합은 안 된다. 크기 또한 일반ATX를 권장한다.
그래픽카드 ? 게임, only 게임
게임이나 영상의 처리 속도를 높여 주는 그래픽카드는 선택의 여지가 ‘O or X’다. 앞서 소개한 모든 CPU는 내장 그래픽을 가지고 있어 게임이 주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장착하지 않아도 된다. 모 유저는 그래픽카드 없이 RAM도 4GB 하나만 꽂고, 오로지 CPU의 높은 동작 수치만을 바라보며 살기도 한다.(부디 그러지 말자) 의외로 그래픽카드는 선택의 여지가 단순하다. 장착을 결정했다면 CPU와 메인보드를 선택한 뒤 총 구입 예산에 맞추면 간단하다.
현재 가장 보편적인 10만 원대 제품군은 엔비디아 GTX750Ti와 AMD R7 270 정도가 있다. 20만 원대로 올라가면 엔비디아 GTX760, R7 270X R9 280 으로 폭이 넓어진다. 30만 원대 제품은 본격적으로 PC의 작동 시간 중 80% 이상을 게임에 쏟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게임 잘 되는 PC’를 찾는 정도라면 그래픽카드에 30만 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저장장치 ? 필수 with 선택
운영체제를 비롯해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저장장치는 현재 HDD의 위치를 깨고 SSD가 메인 저장장치의 입지에 올라서 있다. SSD의 용량 대비 가격은 HDD의 약 12배 정도지만, PC의 가장 기본적 소양인 속도에 있어서 HDD는 SSD를 따라올 수 없다. 과거 약 30초 정도를 전원 버튼을 누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면, SSD 장착 PC의 ‘멍타임’은 그 5분의 1 정도면 된다. 휴일에 하루종일 PC를 켰다 껐다 하는 당신이라면 조금이나마 바보처럼 보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현재 SSD의 사용 범위가 가장 넓은 용량대는 120GB다. 평균 7만 원대에 형성된 가격은 2~3년 전과 비교해도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용량. 여러분의 그 야릇(?)한 누님들을 보관하기에 120GB는 턱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1TB 이상의 HDD를 보조 저장장치로 장착하면 약 13만 원으로 속도와 용량 모두를 잡을 수 있다. 3년 전에 같은 구성을 하려면 30만 원 가까이 들여야 했으니, 새 PC를 맞추기에 좋은 시기라 할 수 있다.
smart PC사랑 | 정환용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디지털포스트(PC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