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PC사랑=임병선 기자] 지금은 공중 분해된 소프트맥스지만, 과거 1990년대 PC게임을 즐겼던 게이머 중 소프트맥스의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프트맥스의 대표작으로는 총 6개의 작품이 출시된 ‘창세기전’(4는 잊자) 시리즈가 있다. 그 밖에 팬들의 뇌리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임으로 ‘주사위의 잔영’이 있다.
주사위의 잔영은 브라우저 형태로 즐겼던 ‘4LEAF’의 미니 게임 형태였다. 4LEAF는 오리지널 세계관인 ‘룬의 아이들’에 ‘테일즈위버’를 연결하는 형태가 될 예정이었지만, 테일즈위버를 별개의 클라이언트로 출시하면서 4LEAF는 붕 뜨게 됐다.
결국 4LEAF는 아바타로 채팅하는 형태만 남았는데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복장이나 액세서리가 창세기전 시리즈의 아이템이라 창세기전 팬들은 여전히 남아 4LEAF를 즐겼다. 그러던 중 뭔가 즐길만한 콘텐츠를 요구하는 유저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주사위의 잔영이라는 보드게임이었다.
하지만 4LEAF는 결국 서비스 종료됐고 주사위의 잔영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이런 와중에 2016년 소프트맥스에서 주사위의 잔영을 모바일 게임화하기로 결정했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2018년 4월 17일, ‘주사위의 잔영 The Roll of Genesis’라는 이름에서 ‘주사위의 잔영 for kakao’(이하 주잔 카카오)라는 이름으로 변경해 출시됐다.
4LEAF의 추억
기자도 창세기전 시리즈를 재밌게 플레이했던 만큼 4LEAF와 주사위의 잔영도 플레이했었다. 2006년 6월 오픈베타를 시작한 4LEAF는 아노마라드 상공에서 보이는 각 지역에 접속한 후 채팅방에 들어가 아바타 채팅을 하는 방식이었다. 당시로는 참신한 채팅 시스템과 다양한 이모티콘이 존재해 창세기전 팬덤은 물론, 채팅을 위해 4LEAF를 접하는 유저가 있었을 정도였다.
최초 20분 접속에 1포인트씩 GP(게임머니)를 줬는데 초창기에는 인기가 상당해 웬만한 채팅 서버에는 방조차도 잡기 힘들었다. GP로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아이템을 살 수 있었는데 GP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채팅방에 들어가 있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던 중 단순히 GP 벌이를 위해 채팅방에 들어와 잠수하는 유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저는 계속 늘어 채팅방 이름 자체가 ‘잠수방’이 되고 채팅 프로그램으로도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여기에 딱히 즐길 거리가 없어지자 기사단(길드) 멤버들이나 접속해 채팅하는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4LEAF 채팅방에서 채팅하면서 다른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던 중 2001년 5월, 처음으로 GP를 모을 수 있는 수단인 주사위의 잔영이 정식 오픈됐고 많은 사람이 게임에 참여했다. 하지만 4LEAF의 수익 모델 자체가 없고 즐길만한 콘텐츠도 이게 전부라 위기감은 계속 지속됐다. 2009년 서비스를 종료해버린 4LEAF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접고 요점인 주사위의 잔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바람 앞의 촛불 신세
주사위의 잔영은 주사위를 굴려 가장 먼저 골에 도달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보드게임이다. ‘창세기전 3’와 ‘창세기전 3 파트 2’의 도트를 재활용해 창세기전 팬들이 대거 유입됐으며, 간단한 게임임에도 쉽게 성공했다.
후속작인 ‘주사위의 잔영 2’를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개발 도중 무산됐고 2016년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소프트맥스의 대표작인 창세기전 시리즈 최신작 ‘창세기전 4’가 폭망하고 사실상 소프트맥스의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가 주사위의 잔영이었다.
하지만 2016년 10월 24일 소프트맥스가 폐사하고 ESA로 인수됐다. 인수되기 전 창세기전 관련 IP를 넥스트플로어에 전부 넘기면서 주사위의 잔영 후속작 출시도 불투명해졌다. 그러던 중 넥스트플로어와 주사위의 잔영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면서 겨우겨우 출시는 가능해졌다.
과거의 아련했던 모습
주인공급 캐릭터인 ‘철가면’이나 ‘살라딘’, ‘데미안’ 등 비싼 GP로 구입할 수 있는 강력한 체스 맨(캐릭터)만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빌리티와 아이템 카드를 잘 활용해야하며, 최대 8명이 즐길 수 있는 난전이었던 만큼 운도 많이 따라야 했다. 원작 게임인 창세기전 3와 창세기전 3 파트 2를 구입하면 제공되는 시리얼 카드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체스맨을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 강력한 캐릭터 카드가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체스맨은 게임 방장에 설정한 소환 포인트 제한에 맞춰 최대 4명까지 가지고 시작했으며, 총 3명까지 체스맨을 합류시켜 강력한 말을 만들 수 있었다. 과거 체스맨의 능력치는 이동 주사 위 수/공격 주사위 수/방어 주사위 수/지력으로 나눴다. 이동 주사위 수는 말 그대로 이동 주사위를 굴릴 때 나오는 주사위 개수이며, 공격 주사위 수는 자신이 공격했을 때 굴릴 수 있는 주사위 수, 방어 주사위 수는 자신이 공격을 당했을 때 굴릴 수 있는 주사위 수이다. 지력은 공격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 주는 보너스 수치이다.
공격 주사위 수가 많아 공격에는 강력한 공격 캐릭터라도 방어 주사위 수는 적기 때문에 방어 캐릭터와 팀을 짜야 안전하며, 안정적으로 수치를 플러스 해주는 지력이 높은 캐릭터도 중요하다. 체스맨은 따로따로 출발시켜 팀을 짜야하기 때문에 처음에 보내는 캐릭터를 공격으로 할지 방어로 할지도 중요한 전략 요소였다.
엉망진창인 현재 모습
주잔 카카오는 과거의 방식과 비교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세계지기(과거 체스맨)는 메인 3명과 서브 2명 등 한 번에 5명을 묶어 출발하는 형식이며, 어빌리티는 메인 캐릭터만 사용 가능하고 아이템은 서브 캐릭터까지 포함해 총 5개를 가지고 시작한다. 과거 아이템 카드가 랜덤 3장으로 제공됐던 것과 달리 주잔 카카오는 캐릭터에 아예 아이템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캐릭터 간의 밸런스는 더 안드로메다로 간다.
캐릭터 등급은 1~6눈(성과 같은 개념)까지 있으며, 기본은 5눈까지만 존재하고 6눈은 강화를 통해 만들 수 있다.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1눈 캐릭터라도 강화와 진화를 통해 6눈으로 만들 수 있고 진화를 할 때마다 능력치와 어빌리티 성능도 강화된다.
즉, 공격 주사위 수가 2개인 1눈 캐릭터라도 6눈까지 진화시키면 공격 주사위 수가 7개가 된다. 반면, 아이템 성능은 별도로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력한 아이템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태생 5눈 캐릭터가 더 강력하다.
강화는 같은 눈의 캐릭터를 합성하면 100% 성공하며, 그보다 아래인 눈의 캐릭터를 합성하면 일정치의 성공 확률이 적용된다.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같은 눈의 수치까지 강화를 한 후, 같은 눈의 캐릭터가 눈 수만큼 필요하다.
즉, 4눈 캐릭터를 5눈 캐릭터로 진화시키려면 4눈 캐릭터를 +4까지 강화하고 4눈 캐릭터 4명을 제물로 바쳐야 된다. 즉, 5눈 캐릭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4눈 캐릭터가 8명(진화시키는 대상 제외)이 필요한 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6눈으로 진화하려면 5눈 캐릭터가 10명 필요하다.
또한, 최종 단계까지 강화된 캐릭터 2명을 제물로 바쳐 랜덤으로 상위 눈 캐릭터를 얻는 교환도 있다. 가장 좋은 효율을 보여주는 캐릭터 모으는 방식은 4눈 캐릭터를 +4까지 2명 만들고 교환으로 5눈 캐릭터를 얻는 것이다.
아리송한 게임 모드
기존 주사위의 잔영은 골까지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지만, 주잔 카카오는 총 5개의 게임 모드를 제공한다. 스토리를 즐기는 시나리오 모드에서는 일반적으로 골 도달 방식이지만, 제한된 턴 안에 보스를 쓰러뜨리거나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도 있다.
이외에 ‘4인 난투’와 ‘팀 승부’, ‘투기장’, ‘용자의 무덤’이 있다. 4인 난투는 각자 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며, 팀 승부는 2 vs 2로 팀을 짜 먼저 골 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 팀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팀워크가 필요하다. 투기장은 이동 어빌리티나 아이템 카드가 무쓸모인 전투만 하는 모드이다. 용자의 무덤은 층을 내려갈수록 강력한 몬스터와 계속 대결하는 방식이다.
이러나저러나 다양한 모드가 있다고 해도 결국 성능 좋은 5눈 캐릭터로 팀을 잘 짜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전략이고 뭐고 거의 필요 없으며, 무조건 좋은 어빌리티와 아이템으로 도배하면 거의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나름대로 전략도 잘 짜야하고 운도 많이 따라줘야 했던 과거의 주사위의 잔영은 어디로 가고 파워 밸런스만 망가져버린 게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유산이란 것은 정말 쓸데없고 부질없는 것인 것 같다.
정말 과거의 추억은 과거의 추억으로 내버려둬야 하는 걸까? 하지만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다. 주잔 카카오는 지웠지만, 지금도 넥스트플로어가 리메이크할 예정인 창세기전 시리즈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