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화이트데이 모바일>의 홍보 이미지.
판매는 3천 장, 패치 다운로드 15만 건? - 손노리의 화이트데이 best 1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 PC 패키지 게임의 영욕을 나누었던 두 개발사가 있다. 창세기전 시리즈로 유명한 소프트맥스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포가튼 사가 등으로 알려진 손노리다. 손노리가 2001년 출시한 공포 어드벤처 게임 <화이트데이>(정식 이름은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는 손노리의 PC 패키지 게임 역사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게임이다.
<화이트데이>는 화이트데이 전날 밤에 학교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다룬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에는 주인공 이외에 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주인공에게 협조하는 여학생들이나 여자 귀신 등 도움을 주는 캐릭터와 주인공의 적인 귀신, 그리고 귀신에 빙의된 수위가 등장한다. 수위는 외국 공포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인 <클락 타워>의 악당 ‘시저맨’처럼 죽일 수 없는 존재라서 수위에게 발각되면 달아나 숨는 것 외에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게임에는 손노리 특유의 자잘한 위트도 숨어 있다. 학교라는 배경에 걸맞게 복도 곳곳에 배치된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음료수 등을 마시면 체력이 회복되는 시스템 등은 손노리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화이트데이>에 공포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위의 추격에서 벗어나 학교를 탈출하면서 도중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액션 RPG의 퀘스트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만나는 여학생들과 친밀도에 따른 멀티엔딩이 등장하는 등 연애 시뮬레이션 요소도 갖고 있다. 또 <화이트데이>를 플레이한 게이머들이 자신의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온라인 랭킹 서비스도 지원해 공식 사이트에서 자신의 랭킹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렇게 게임 안팎에서 주어지는 잔재미들과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공포 어드벤처라는 색다른 장르, 그리고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의 테마곡 ‘미궁’과 같은 주옥같은 음악들이 잘 어우러져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냈기에 <화이트데이>는 적어도 5만 장, 잘 팔리면 1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명작의 발목을 잡은 것은 2000년대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불법복제다. 손노리 게임을 즐겨 하는 고정 팬들을 비롯하여 많은 게이머들이 출시 전부터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들을 보였지만 발매 당일 크랙이 돌기 시작했고, 불법복제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개발사인 손노리는 공지를 통해 불법복제 행위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와레즈 사이트 등에서 게임이 공유되는 현장을 신고해달라는 요청까지 했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고, 손노리 측에서 고소한 웹하드와 와레즈 사이트 관계자들은 뻔뻔하게도 ‘정보 공유’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개발사를 매도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손노리는 패치를 통해 ‘코드 인증 시스템’을 추가하여 불법복제를 막고자 했지만, 해당 패치를 내려 받아 설치한 게이머들 중 일부 정품 이용자가 인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할 수 없이 코드 인증 시스템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패치를 배포할 수밖에 없었다.
와레즈를 통한 불법복제 기승
결국 <화이트데이>는 게이머들의 기대와 완성도, 그리고 전문가들의 평가에 견줘 부진한 판매고를 기록했다. 당시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발매 초기 고작 3천 장을 판매했을 때 패치 다운로드가 무려 15만 건을 기록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화이트데이>의 누적 패치 다운로드 수가 무려 백만 건에 이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불법복제의 피해가 얼마 나 심한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그 이후 <화이트데이>의 판매는 꾸준히 이루어져 초판은 매진되었고, 재판까지 합쳐 약 1만5천 장 정도가 판매되었다지만 손노리라는 개발사의 명성이나 게임 완성도, 그리고 발매 전에 전문가들과 게이머들이 가졌던 기대를 감안한다면 성과는 기대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
그 뒤 손노리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리메이크판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과 손노리의 패키지 게임 모음집에 해당하는 <패키지의 로망>을 내는 것을 끝으로 패키지 게임 관련 사업에서 손을 땐다. 현재 <화이트데이>는 손노리에서 분사한 엔트리브 소프트에 의해 최근 <화이트데이 모바일>로 부활했다. 휴대폰 속에서 배경 음악인 미궁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면 오싹한 느낌과 함께 옛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 비운의 명작, <화이트데이>의 슬픈 기억이.
불법복제 때문에 게이머 대신 피눈물을 흘린 <화이트데이>.
디아블로의 그늘에 가려 버린 명작 - 웨스트우드 녹스 best 2
<녹스>의 세계에서도 마법사의 체력은 약하다.
<디아블로>는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했을 뿐 아니라 흥행 게임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액션 롤플레잉 게임에 범접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게임 시리즈이다. <디아블로>에 희생(?)된 게임이 디아블로의 캐릭터인 바바리안의 훨윈드에 잘려나간 몬스터만큼이나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돈다. <디아블로 2>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가 결국 사라져버린 비운의 명작 게임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이 <녹스>다.
당초 <녹스>는 <디아블로 2>와 정면 대결을 펼칠 예정이었지만 블리자드의 고질병인 발매 연기로 인해 약 5개월 정도 먼저 출시되었다. 이는 <녹스>에게 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녹스>는 시장에 나서면서부터 <디아블로 2>의 대항마로 알려지면서 게이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주목도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쟁 게임과 승부에서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디아블로>처럼 ‘액션 롤플레잉’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녹스>는 마법을 쓰지 못하지만 근접전이 탁월한 전사, 초반에는 다소 어렵지만 위력적인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 원거리 무기를 쓰며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 소환사의 세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런 직업 구성 때문에 <녹스>는 <디아블로 2>가 아닌 <디아블로 1>과 비교되기도 했다.
주위의 상자를 열거나 항아리, 나무통을 깨는 정도의 행동밖에 할 수 없는 <디아블로>와는 달리 <녹스>는 게임 안에 있는 물건 중 많은 것을 옮기고 다룰 수 있었으며 이는 게임 진행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 ‘트루 사이트 시스템’(true sight system)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야 시스템도 가지고 있었다. 가령 문이 닫혀 있다면 완전히 보이지 않다가 문이 반쯤 열리면 그만큼의 시야를 제공되어 긴장감과 현실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이다.
인터페이스는 울티마를 많이 모방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꽤 조화롭고 편리하게 구성되어 독창성은 약간 덜해도 게이머들은 매우 편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녹스>에서 제공되는 멀티플레이는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싱글 플레이와는 달리 게이머들이 다양한 직업군을 조합해 퀘스트를 해결하고, 멀티플레이에서만 제공되는 여러 다른 게임 모드들을 클리어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멀티플레이를 하더라도 싱글과 다를 게 없는 디아블로 시리즈보다 <녹스>의 멀티플레이가 한 수 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흡입력 부족한 줄거리 약점
물론 <녹스>에게도 약점은 있다. 액션을 강조하면서도 그 속에 시나리오를 절묘하게 녹여낸 훌륭한 연출로 게이머들의 지지를 받은 <디아블로>와 달리 <녹스>의 연출은 다소 엉성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평범한 주인공 잭이 가상 세계에서 전설의 영웅이 되도록 선택 받는 부분에서 어색함이 느껴지고, 최종 보스인 헤쿠바가 왜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잘 와닿지 않는다. 갈등 구조나 반전 등이 없는 스토리라인과 공감을 얻는 연출의 부재는 <녹스>에서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을 게임 플레이 자체로 한정시키고 말았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액션 그 자체는 디아블로에 견줄 만큼 매우 훌륭하면서도 디아블로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주었고, 멀티플레이는 디아블로보다 더 다채로운 즐길 거리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녹스 커뮤니티에서 자체 대회를 벌일 정도이다. <녹스> 마니아들은 이 게임을 당시 액션 롤플레잉 게임의 최고로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 게이머들의 평가는 이와 달라서 전체적인 부분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없는 <녹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녹스>는 좋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디아블로>와 치른 정면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건재한 녹스의 커뮤니티 사이트.
저용량이라서 더 서러웠던 비운의 게임 - 가람과바람 씰 best3
이 타이틀 화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게이머들 사이에서 <씰>이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그리곤 엔터테인먼트에서 2000년 초에 출시한 <씰 온라인>을 말하겠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룰 게임은 <씰 온라인>이 아니라 그냥 <씰>(정식 명칭은 ‘씰: 운명의 여행자’)이다. PC 패키지 게임이 아닌 온라인 게임으로 기억될 만큼 존재가 거의 잊혔다는 것, 그리고 이 게임을 제작한 가람과바람이라는 팀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씰>에게 씌워진 비운의 굴레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말해 준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PC 패키지 게임 개발사의 양대 산맥은 소프트맥스와 손노리였지만, 씰을 제작한 가람과바람은 그들과는 다른 롤플레잉 게임을 선보인 개발팀이었다. 처음 제작했던 <레이디안>은 야심찬 출발과 감성 있는 일러스트로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끌었지만 엉성한 줄거리와 불편한 인터페이스 등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가람과바람은 약 1년 뒤 더 짜임새 있는 줄거리로 무장한 롤플레잉 게임을 출시했다. 바로 <씰>이었다.
야심차게 출시된 <씰>은 발매되자마자 불법복제로 엄청난 몸살을 앓았다. <씰>이 불법복제의 1순위 표적이 된 것은 게임의 주목도도 높았지만, 발매 시기(2000년 4월)에 나온 다른 게임들에 견줘 용량이 CD 1장 분량으로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불법 이용자들이 말하는 허황된 논리인 ‘공짜 홍보’ 효과를 거두는 데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평만 늘리는 역할을 했다. <씰>의 불법복제판으로 처음 나돌기 시작한 크랙 파일이 정식 출시 버전이 아니라 치명적 버그가 있는 베타 테스트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베타 테스트 버전의 오류를 경험한 이들은 ‘불법복제판으로 경험한 주제에’ <씰>에 대한 갖은 악평을 늘어놓았고, <씰>은 흥행에 성공할 리가 없었다.
가람과바람 팀은 <씰>의 흥행 참패를 견디지 못하고 2000년 7월 해체되어 타 회사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씰>의 불운은 팀 해체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말, <씰>의 유통사인 카마 엔터테인먼트가 가람과바람 팀의 동의 없이 <씰>을 월간지의 번들 타이틀로 제공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미 불법복제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씰>을 월간지의 번들 타이틀로 제공하려 하는 유통사의 행동에 게이머들은 분노했고, 가람과바람에 관련된 이들 역시 이 사실에 허탈함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당시 가람과바람의 개발자 중 한 명은 이 사실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도의를 어긴 유통사 측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분쟁 과정에서 유통사인 카마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씰>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외에 알려졌는데, <씰>은 8개월 동안 고작 2,000장 정도가 팔렸을 뿐이고 추가 수요를 기대할 수 없어 재판 제작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씰>은 간간이 중고시장에서나 가물에 콩 나듯 찾을 수 있는 게임 타이틀이 되었고, 가람과바람이 그리곤 엔터테인먼트로 흡수되어 <씰 온라인>을 만들기까지 완전히 잊힌 이름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당시 카마 엔터테인먼트의 행동은 법적 문제가 없었다. 가람과바람은 유통사 측에 번들과 관련된 독점 권한을 제공한다고 계약서에 밝혔으며, 가람과바람의 동의 없이 번들을 내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구두 계약에 해당되는 부분이어서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가람과바람은 공식 입장을 통해 이런 부분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계약 미숙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고, 유통사는 계약에 명시된 권한을 합법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카마 엔터테인먼트에게 법적인 책임은 없을지언정, 도의적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구두 계약을 내팽게친 것은 신의를 져버린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씰>이 불법복제로 처참한 피해를 입고 가람과바람이 해체했을 즈음, 게임업계에 종사하던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회사로 한 학생이 전화를 해서 게임에 버그가 있고, 패치도 되지 않아 게임 CD 교환을 요청했다. 개발사측에서 문제가 있는 CD를 보내달라고 하자 “백업 CD도 교환 되죠?”라는 말을 했다는 것. 알고 봤더니 버그가 득실거리는 크랙을 깔아서 정품 패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정품을 복사한 것도 아니고, 베타 버전이라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걸 불법복제로 깔아놓고 AS를 요구한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쓴 웃음을 짓는 지인의 모습은 정말 슬퍼보였다. 게이머들의 이런 무지가 가람과바람이라는 유망한 개발팀을 잊히게 만들고 PC 패키지 게임이었다는 사실마저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사상 최악의 불법복제 피해를 입은 <씰>.
이제는 <씰>을 온라인 게임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단지 그대가 메카닉이라는 이유만으로 - 재미시스템 액시스 best 4
메카닉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를 위한 장르다.
지금은 소수의 마니아들만 기억하는 <액시스>는 재미시스템이 2001년 출시한 메카닉 FPS 게임이다. 재미시스템은 <액시스>를 만들기 전 <엑스톰 3D>라는 3인칭 슈팅 게임을 제작해 국내 기술로도 훌륭한 3D 슈팅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개발사였다. <액시스>는 한 단계 더 발전하여 3D 그래픽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국내 기술로도 메카닉 FPS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수작이었다.
메카닉 FPS 게임이라는 점 때문에 <액시스>는 출시 당시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콘솔 게임인 <아머드 코어> 시리즈와 비교되었는데 메카닉의 기본 특정이나 아머드 코어에는 없는 다양한 부스터를 적용할 수 있는 점 등 <액시스>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류작이라는 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간단한 인터페이스,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부스터를 이용해 빠른 전투와 360도 방향 전환이 가능한 <액시스>의 게임 특성은 메카닉보다는 <퀘이크> 혹은 <언리얼 토너먼트> 같은 입체감 있는 전략이 필요한 FPS 게임을 많이 닮아 있었다.
커스터마이즈 기능도 꽤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능력치와 다양한 모양의 부품을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게 고를 수 있었다. <액시스>의 메카닉 기체는 ‘최대 하중 능력’이라는 제한이 있어 무작정 좋은 부품을 단다고 메카닉의 능력이 마냥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제한을 넘어서는 커스터마이징을 할 경우에는 메카닉 기체의 능력치가 떨어지는 일도 발생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가능성과 장점이 충분한 게임이었지만 <액시스>는 발매 당시에 전문가들이나 게이머들에게 받았던 기대만큼의 판매 실적을 올리지도 못했고 널리 기억되는 게임으로 남지도 못한 채 묻혀 버리고 말았다. 물론 모든 PC 패키지 게임이 피할 수 없던 불법복제가 <액시스>의 흥행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메카닉 FPS라는 장르는 우리나라 게이머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메카닉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수 마니아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어서 ‘메카닉 게임은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저주 비슷한 격언까지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당시 FPS는 대세가 되기에 한참 부족한 시기였다. <액시스>가 출시된 2001년에는 <레인보우 식스>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의 밀리터리 FPS 게임이 대중화의 싹을 틔우던 시절이었다. <퀘이크>나 <언리얼>처럼 <액시스>와 비슷한 공간을 활용하는 FPS 게임은 국내 게이머들조차 까다로워 했다. 결국 <액시스>에 적응할 수 있는 게이머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시기적인 문제도 있었다. <액시스>가 출시된 2000년대 초반은 이미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PC 패키지 게임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게임계의 주도권이 넘어가던 시절이다. 물론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와 같은 네트워크 지원 게임의 성공 덕이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급속하게 성장한 온라인 게임이 빠르게 PC방의 컴퓨터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네트워크 플레이에 중점을 둔 PC 패키지 게임이 기존의 흥행 게임들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임팩트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게임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 역시 온라인 게임과 경쟁에서 밀리는 요인이었다.
독특한 게임성도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싱글 플레이에서 등장하는 적의 인공지능이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물론 싱글 플레이에서 <액시스>만의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만 훈련 모드조차 없어 메카닉 FPS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누구라도 매료시킬 만한 강렬한 액션이 있다 해도, 그것을 게이머들이 느끼도록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액시스>의 독특한 게임성은 게임 외적으로도 인정받아 당시 프로게이머 리그를 주관하던 프로게임코리아오픈(PKO)에 의해 이벤트 리그가 열리면서 <아트록스>, <임진록 2>, <쥬라기원시전 2> 등과 함께 e스포츠 공인 종목으로 채택되어 초기 e스포츠의 다변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다른 국산 게임처럼 이벤트 리그 초기에만 반짝 호응을 얻었을 뿐 이름뿐인 공인 종목으로 남아 있다가 결국 2007년 11월 7일 e스포츠 공인 종목에서 제외되면서 <액시스>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가 필자에게 <액시스>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메카닉이라.” 그 한 마디에 <액시스>의 불운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e스포츠 공인 종목에서도 제외된 <액시스>.
국내 RPG 명가의 영욕을 상징하는 아이콘 - 소프트맥스 마그나카르타 best 5
당시 <마그나카르타>만큼 많은 기대를 받은 국산 게임은 없었다.
소프트맥스가 창세기전 시리즈 이후 창세기전과는 다른 세계관의 신작 롤플레잉 게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게이머들은 창세기전 없는 소프트맥스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게임 타이틀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가졌다. 게임 관계자들 역시 소프트맥스의 신작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마그나카르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마그나카르타>는 관계자들이나 게이머들이 부여한 의미 이상으로 소프트맥스에게도 중요한 게임이었다. 내심 20만 장 이상 판매되기를 바랐던 <창세기전 3 파트.2>가 기대만큼의 판매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부진을 겪기도 했고, 소프트맥스 역시 <창세기전>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1일부터 시작된 <마그나카르타>의 예약판매에는 단 3일 만에 1만5천 장의 주문이 쇄도했다. <창세기전 3 파트.2>의 예약판매가 2주일 동안 약 1만 장 정도였고,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른 2001년 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게이머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2001년 12월, 몇 번의 출시 연기 끝에 <마그나카르타>가 출시되었다. 그 결과는 많은 이들이 아는 바와 같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발매를 몇 차례 연기하고도 설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오류들이 연이어 발견되었으며, 다행히 설치가 되었다고 해도 게이머들이 게임을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버그가 득실거렸다. <마그나카르타>를 구입한 게이머들은 실망과 분노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소프트맥스는 <마그나카르타>의 출시를 더 미룰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기업의 연간 매출 실적 때문이었다. 그 해에 새로운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면 연간 매출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간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오기로 한 제품이 제때 출시되지 않으면 기업의 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발생한다. 실제로 2001년 11월 당시 삼성증권은 <마그나카르타>의 출시 연기로 소프트맥스가 2001년 목표 실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굳이 <마그나카르타>가 아니더라도 소프트맥스의 게임들이 대부분 12월에 출시된 것도 상당 부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프트맥스라는 기업의 처지일 뿐이고 게이머들이 이를 고려해서 문제가 있는 상품을 용서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소프트맥스는 <마그나카르타>가 출시되기 3년 전에 <창세기전 외전 2: 템페스트>를 상당한 결함이 있는 상태로 내놓아 창세기전 시리즈를 아끼는 팬들에게 엄청난 원성을 들은 전과가 있었다. 창세기전 시리즈의 다른 게임 역시 자잘한 버그가 항상 지적되어 왔었다. 따라서 그 당시 소프트맥스와 <마그나카르타>를 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원성과 분노는 게임 자체의 결함 이상의 의미를 내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패키지 게임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졌던 소프트맥스마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제품을 출시했다는 실망감과 템페스트로 게이머들에게 배신감을 안긴 것으로 부족해 또 다시 실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게임을 출시했다는 배신감 등이 합쳐진 것이었다.
결국 소프트맥스는 초기 물량 8만 장을 전량 리콜하지만, 실추된 신뢰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그나카르타>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만들다말았다’, ‘버그나깔았다’ 등의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수치를 당하며 <포가튼 사가>가 차지하고 있던 우리나라 최고 버그 게임이라는 ‘불명예 전당’의 한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세간에는 이와 더불어 ‘버그열전’으로 불리며 싸늘하게 외면당한 <천랑열전>을 합해 ‘대한민국 3대 버그 게임’이라 부르고 있다.
시장의 홀대는 더욱 심각했다. <마그나카르타>의 한정판이 다른 게임의 번들로 제공되는가 하면 정식 패키지가 단돈 천 원 한 장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쇼핑몰에서 <마그나카르타>를 번들로 주면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굴욕을 경험했다.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시리즈로 인해 얻은 영광과 신뢰를 모두 잃어버리는 치명상을 입은 채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메인 무대에서 쓸쓸히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맥스는 <마그나카르타>의 처참한 실패 이후 PC 패키지 게임은 더 이상 출시하지 않고 있지만, <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2004년 12월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이 출시되어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올해에는 <마그나카르타 2>가 엑스박스 360으로 출시되었다. 일본에서 먼저 출시된 <마그나카르타 2>는 발매 첫 주에 엑스박스 360 타이틀 중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 게이머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앞으로 <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은 <창세기전>에 버금가는 영광의 이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PC 패키지 게임의 자존심인 소프트맥스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비운의 게임이었을까? - 팔콤 쯔바이 best 6
조만간 온라인으로 변신한 새 <쯔바이>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거의 사멸해 가던 2002년. <이스>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명가 팔콤에서 <쯔바이>를 발표했다는 소식에 게이머들은 엄청난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출시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게이머들은 좌절했다. <쯔바이>를 기대하던 게이머들은 팔콤에 정식 한국어판을 내달라는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청원이 통해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한글판을 낼 계획이 있어서인지 <쯔바이>의 정식 한국어판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만연할 대로 만연한 불법복제는 이미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일부 게이머들의 노력도 상관없이 <쯔바이>의 불법복제판 역시 <쯔바이>의 인기와 명성만큼이나 매우 재빠르게 확산되었다. 결국 <쯔바이> 역시 불법복제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았으며, 많은 물량이 재고로 남겨져 <쯔바이>는 현재까지도 박스 게임 혹은 주얼 게임으로 남아 쇼핑몰을 떠돌거나 신작 게임의 번들로 제공되는 불운을 겪고 있다. <쯔바이>의 불운은 이른바 ‘쯔바이 사태’ 등의 신조어를 낳으며 지금까지도 “서명운동까지 한 쯔바이가 겨우 3천 장 팔렸다더라”, “쯔바이 이후로 팔콤에서 더 이상 국내에 패키지 게임을 정식 발매를 하지 않는다더라”하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비운의 게임’들과는 달리 <쯔바이>에 대한 이야기들 중 몇몇은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당시 <쯔바이>의 판매량이 불법복제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2002년 당시의 언론 기사를 보면 P2P 사이트 등에 대한 재빠른 단속과 게이머들의 자발적인 신고 등으로 인해 불법복제의 피해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고, 초판인 1만 카피의 물량을 모두 판매한 이후 재판을 찍었다는 보도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쯔바이>가 3천 카피 팔렸다는 소문은 사실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국내 유통사가 기대한 10만 카피에는 훨씬 못 미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말았지만 2002년은 게임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거의 사멸하다시피 한 때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다른 비운의 게임들보다 훨씬 운이 좋은 매출을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팔콤이 우리나라에 더 이상 게임 타이틀을 정식 출시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다. 팔콤의 새 게임인 <구루민>은 <쯔바이>를 출시한 이후 3년 뒤인 2005년에 정식 한국어판 패키지로 출시되었다. 물론 쯔바이 이후 PC 패키지 게임 시장은 더욱 안 좋아져 팔콤도 2008년에 내놓은 <쯔바이 2>를 대한민국에 출시하지 않았지만, <구루민>이 나온 것은 엄연한 사실인 만큼 팔콤이 국내에 정식 한국어판을 더 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담이지만 <쯔바이>와 <구루민>의 뒤를 이어 발매한 팔콤의 게임 타이틀 중에는 아루온 게임즈가 유통한 <영웅전설 6: 천공의 궤적>과 같은 게임도 있었으나 <영웅전설 6>을 비롯한 몇몇 게임들은 패키지를 구입한 뒤 온라인 인증을 받아 따로 월 이용료를 지불해야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서비스되어 ‘돈만 안다’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팔콤의 패키지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말았다.
<쯔바이>는 일본 롤플레잉 게임이면서도 일본 롤플레잉 게임과는 꽤 다른 특징들을 여럿 지니고 있다. 성장 시스템만 놓고 보아도 몬스터 경험치로 레벨업을 하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없애면 나오는 음식을 먹고 그 음식에 대한 경험치를 얻음으로서 레벨 업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또 두 명의 주인공이 경험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며 성장해 나간다.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에서 당연시되던 특정 주인공을 키우기 위한 레벨 노가다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이라는 이야기다.
게임 속에서 특정한 아이템을 일정한 수만큼 모으면 윈도 환경에서 쓸 수 있는 시계와 계산기 같은 보너스 프로그램을 얻을 수 있는 등, 기존의 패키지 롤플레잉 게임과는 많이 다른 혁신적인 요소가 들어있어 발매된 지 7년이 지났음에도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 물론 한글화 역시 잘 된 편이어서 필자도 꽤 재미있게 했고, 패키지 하나는 소장용으로 소중히 가지고 있다.
2008년에는 후속작인 <쯔바이 2>가 나왔고, 온라인화도 진행되고 있는데 <쯔바이 온라인>은 한국의 네온소프트와 일본 팔콤이 공동 제작하고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가 유통하는 한일 합작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게이머들에게 다가올 예정이다. 이렇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쯔바이>의 모습을 보면, 비록 당시의 다른 PC게임들처럼 불법복제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비운의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비운의 게임들에 견줘 상황이 조금 나았을 뿐, <쯔바이> 역시 명성과 기대, 열기에 비해 많이 팔리지 않은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쯔바이 2>는 아쉽게도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잘 만든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다 - 루카스 아츠 그림 판당고 best 7
‘죽은 자의 세계’라는 독특한 배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앞서 많은 게임들의 불운을 이야기했지만, 불운의 강도로 본다면 앞서 소개한 게임, 아니 그 어떤 PC 게임의 불운도 <그림 판당고>의 불운과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성이 훌륭하고, 게이머들과 전문가들에게 명작이라고 인정받고, 스토리까지 좋은데 정말 누구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요소 때문에 참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임은 정말 드물다. 그런 게임이 바로 <그림 판당고>다. 본지 5월호에 다뤘던 [어드벤처 게임의 어제와 오늘]에서 <그림 판당고>를 꽤 비중 있게 언급한 것 역시 높은 완성도와 그 완성도만큼이나 거대한 불운이 인상적인 때문이다.
줄거리 하나만 보더라도, <그림 판당고>의 독창성과 유기적인 구성을 따라갈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림 판당고>의 주요 줄거리는 사자(死者)의 땅에서 가이드를 맡은 ‘매니 칼라베라’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부서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하며 저승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리고, 저승에서 탈출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사자의 땅 등 줄거리를 이루는 큰 줄기는 고대 역사에 등장하는 아즈텍 문명의 전설이다. 여기에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인 루카스 아츠 특유의 유머 감각이나 카사블랑카 같은 고전 영화부터 홍콩 영화까지 다양한 패러디와 오마주가 더해져 한 편의 대하 드라마를 써도 될 만큼 치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억지스러움이나 무리한 설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감탄하게 된다.
어디 줄거리뿐인가. 재즈, 블루스를 중심으로 멕시코 전통 음악까지 망라한 음악은 <그림 판당고>의 분위기를 맛깔스럽게 북돋운다. 등장인물의 성우 캐스팅 역시 게임의 흥미를 더해 비록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어투나 목소리 톤만으로도 게임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 게이머도 <그림 판당고>의 분위기에는 열이면 열 고개를 끄덕일 만큼 게임 연출에 있어서 최상의 평가를 받았다.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독특한 그래픽 역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만큼 인상적인데, 당시 완성도가 떨어지는 3D 엔진 때문에 원통에 해골 모양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한 것이 오히려 게임의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는 요인이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잘 만들었는데도 게임이 ‘망했다’. 망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면 차라리 이해가 가겠는데, <그림 판당고>는 도저히 이유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로 한정하자면 <그림 판당고>의 참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의 열풍에 휩싸여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그림 판당고>가 출시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유통사인 동서게임채널의 홍보는 엇박자였으며, 설상가상 정식 발매된 <그림 판당고>는 한글 자막마저 없는, 전혀 한글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사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어드벤처 게임이 한글화 없이 출시되었다는 것이 게임 판매에 얼마나 치명타로 작용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언어 장벽이 판매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북미 시장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그림 판당고>가 흥행에 참패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지 않다. 이러니 불가사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3D 그래픽을 도입하면서 이전의 루카스 아츠 게임과는 다른 캐릭터 조작 방식을 채택한 것이나 불편한 인터페이스 등이 루카스 아츠의 어드벤처를 좋아하던 이들에게 이질적인 부분으로 취급 받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팬들이 <그림 판당고>의 완성도를 깎아내렸던 것은 아니다. 이런 불만도 <그림 판당고>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견주면 그나마 부족해 보인다는 의견 정도일 뿐이었다. 차라리 ‘그림 판당고의 참패는 스타크래프트를 누르고 1998년 올해의 게임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라는 괴담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릴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독일의 아동심리학자 볼프강 베르크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컴퓨터 게임들>이라는 책에서는, 3분 이상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적이 없을 정도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행동장애 어린이에게 <그림 판당고>를 시켰더니 무려 2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 있을 만큼 어린이의 정서적, 지적 능력을 교정하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는 사례가 실려 있다. 좋은 게임은 어떻게든 세상에서 알아준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림 판당고>는 최근 게이머들이 카페를 만들어 자체 한글화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