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사랑이2007년을맞아새로운기획을마련했다. ‘IT 현장헤집기’는PC사랑기자가직접IT현장을가서그곳의빛과그림자를여과없이전한다. 첫번째로용산의불법복제CD·DVD 시장을찾았다. |
선인상가와신용산역을잇는굴다리밑.20대 후반 정도의 청년이 벽에 붙어있는 프로그램 목록을 흘깃쳐다보고 잰걸음으로 지나친다.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같은길을 되돌아온다. 건너편 상가에서 볼일을 보기엔 짧은 시간이다. 서너 차례오가면서도 노점상앞에서발걸음을늦추진않는다. “어떤프로그램찾으세요?” 보다못한노점상아저씨가그에게바싹붙어서묻는다. “윈도XP 있나요?” 손님은왠지안도의빛을보이며묻는다. 노점상 아저씨는 별도로 인증 없이 컴퓨터에 깔기만 하면 된다는 점, SP2까지담겨있다는점등을설명했다. 케이스도 없이 비닐로만 쌓인 CD를 꺼내 손님에게 건넨다. 값은 한 장에 1만5천 원.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적어준다. 손님은건네받은CD를점퍼의주머니에넣고서둘러사라졌다. 굴다리밑에서복제CD를찾는사람들이곳은 몇 년 전만해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불법 복제 CD를 파는노점상이통로좌우로즐비했던곳이다. 취급하는 품목은 김씨 자신조차도 재대로 세보지 않아서 정확하지않다.“뭐수천가지되겠지”정도가대답할수있는전부다. CD들을깔아놓고팔지는않는다. 벽에구비하고있는CD 목록을죽써서붙여놨을 뿐이다. 윈도 XP 등 운영체제부터A글, 포토샵, 게임 타이틀까지목록이수천가지에이른다. 자주찾는물품몇가지만옆에가져다놓았고나머지는다른곳에두고필요하면가져온다고한다. |
CD는 어디서 굽느냐고 물어보았지만“우리가 직접 굽지는 않는다”라는말을끝으로그와관련해서는 더이상묻지말라고한다.운영체제에서게임타이틀까지수천가지구비회사원으로 보이는한사람이와서는예의윈도XP를 찾았다. “한장사면몇대까지깔수있나요?” “얼마못깔아요. 몇대나까실려구요” “사무실에PC가열대정도있는데….” “무슨 한 장사서 열대씩이나 깔려고 하세요. 세 장 정도 사가세요.서너대이상은잘안깔리더라구요” 불법 복제 CD 한 장으로 열 대의 사무실 컴퓨터를 쓰겠다는 손님이나, 인증 패치까지 해놓은 복제 CD가 몇 대 이상은 깔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저씨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갱이끝에 그 손님은 한 장의 CD만을 샀다. 아저씬 마뜩찮은 표정으로“ 도중에안깔리는일이있어도책임못진다”며CD를 건넨다.불법적인 거래라고 해서 이처럼 꼭 서로 속고 속이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단골손님들도 꽤 된다. 단골들이이곳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곳이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프로그램은 다 구할 수 있고, 인터넷처럼 막상받고서프로그램을실행해보면 내용물은딴판인경우는없다. “저번에여기서산건데안되더라구” 흰머리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와서 김 씨에게 와서 말했다. |
김형모(가명·41)씨가 여기서 장사를 시작한 지는 4년 정도 됐다.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좁은 다리 밑에 최대 일곱 팀까지 복제CD 장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 정리하고 김씨들만이남았다. 그마저도 장사가 영 시원찮아 곧 접어야겠다고 연신 말한다. 하루 매상이 얼마냐는 질문엔 그냥웃음으로대답을피했다. 아침 10시부터 자리를 펴서 저녁 7시 정도에 접는다. 특별히 많이 팔리는 시간은 없지만 그나마오후 2시에서 4시 사이가 좀 낫다. 초고속 인터넷이널리쓰이고P2P프로그램들이많아지면서 불법 복제 CD를 사서 쓰는 사람은 눈에띄게 줄었다.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잘 쓸줄 모르거나 받아서 쓰는 것을 귀찮아하는사람들이여전히이곳을찾는다. |
용산PC 조립업체에서 운영체제를 깔아주는 관행이 사라지면서 PC를 조립한뒤 곧바로 이곳을 찾아 윈도 XP를사가는사람들도늘었다고한다. 이미서로익숙한사이인듯하다. 할아버지와 김씨 사이에 몇 마디가 오간다. 설명을 모두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또 다른 프로그램 CD를 사고 단 돈 만원을내밀었다. “오늘만 빼드리는 겁니다. 다음에 오실 땐 한 장에 만오천 원 주셔야해요” 김씨는너스레를떨며그돈을받아들었다. “프로그램 까실 때 잘 안되면 직접 오지 마시고 전화를 하세요. 그래서번호알려드린건데….” 단골손님발길도이어져 “어차피 이 장사도 머지않아 끝이야. 누가 좋아서 불법 복제 장사하겠어” 손님이뜸한사이김씨는조금속내를끄집어냈다. “여기 지금 같이 하는 사람들 거의 다 빵 경력 있는 사람들이야. 다합치면수십년은될걸. 그나마맘잡고한다는게이일이야” 앞으로 3~4개월 후에는 이 장사를 접겠다는 김씨의 말이 진심인지아니면장사하는사람들이의례하는푸념인지는 알길이없다. “DVD는취급안하시나봐요?”기자가물었다.“우린 영화는 취급 안 해. 이 바닥에도 나름대로 룰이 있어. 프로그램만 하는 사람은 프로그램만 팔고, 영화 DVD나 CD 파는 사람은영화만갖다놔. |
”김씨 말마따나 용산의 불법 복제 상인 누구도 프로그램 CD와 영화DVD를함께팔지는않는다.용산에 프로그램 복제 CD를 파는 상인들은 김씨네 한 팀밖에 남지않았지만 최근 들어 영화 DVD를 파는 노점상들은 오히려 눈에 띄게늘었다.국철 용산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영화 DVD 판매상이 보인다. 전자상가 구름다리 건너면 서너 개의 노점상이 더 보인다. 선인상가 앞에는 5~6개의 영화 DVD 판매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아직 상영관에 걸려있는 최신 영화를 포함 만 원이면 DVD 3~4장을살수있다.물론길거리에서 파는영화DVD는대부분불법복제한것들이다.겉으로 봐서는 정품과 구별하기 어렵게 포장되어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프린트 상태 등 한눈에 정품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
아직DVD로 정식 발매가 되지 않은 최신 영화의 경우는 극장에서 캠코더로찍은것을DVD에옮겨담아화질이조악하다.겉으론정품과구별하기힘든불법복제DVD불법 제품을 취급하는 만큼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말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서 장사를 시작 한지 3년 남짓 됐다는 이상민(가명·32) 씨에게서 겨우 이 바닥 이야기를 몇 마디 들을 수있었다. 처음 용산에 영화 불법 DVD 복제상이 들어섰을 때만해도 장당 가격은만원정도였다.그러던 것이 노점상이 늘어나고 가격경쟁이 붙으면서 지금은만 원에 4장도 살 수 있다. DVD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되고, DVD 미디어 값이 싸진 것도 복제 DVD 가격하락을 부추겼다. 옆에 노점상 하나가 늘어나면 눈총을 받기는 하지만 어차피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이거나 한 다리 걸치면 아는 사이란다. 그렇게 늘어난 DVD노점상이용산여기저기열개도넘는다.이씨 역시 아는 선배랑 손을 잡고 일을 시작했고, 이젠 주변에서장사하는사람들과대부분친하다.“여기서 파는 게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고 찾는 손님은 차라리편해요. 정품여부등을꼬치꼬치캐물으면곤란해지죠” 젊은 사람들은 대게 이곳에서 파는 것들이 정품이 아닌 것을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만화나 영화를 사러 온 아주머니들은 정품과 복제품의 차이를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경우엔 이곳에서 사는 것은 불법임을 알려주고 주변에 정품을파는가게를알려주기도한다.아직 미혼이라고 말한 이 씨는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작더라도 떳떳하게 이름을 내걸고 할 수 있는 가게를 마련하고 싶다고했다. “결혼 후에 까지 이 장사 하고 있을 수는 없죠. 물론 그 전에 여자친구부터만들어야겠지만….” 그는막들어선손님을맞기위해다시몸을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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