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Life after people’이란 다큐멘터리를 아는가? 2008년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된 가상 다큐멘터리로 ‘갑자기 인류가 모두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설과 함께 지구 상에 벌어질 일들을 추측한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게임으로 다룬 독특한 게임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게임인 줄 알았는데, 웬걸? 이 게임은 뜻밖에 신선하고 재밌다. 일 때문이 아니라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해본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동물들만 있는 도시
이 게임의 무대는 20XX년 도쿄. 최근 지진과 방사능으로 떠들썩한 일본에서 이런 게임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한동안 일본에서 재해 관련 게임이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었는데, 이런 게임이 나오는 걸 보니 좀 잠잠해진 모양이다.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이야기를 다룬다. 게이머는 50종에 가까운 동물 중 하나를 선택해 도쿄에서 살아간다.
동물은 크게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나뉜다. 육식동물은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공격해 잡아먹고, 강한 동물은 되도록 피해 다녀야 한다. 그렇다고 강한 동물과 맞닥뜨리면 무작정 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약한 동물은 무리를 지어 맞서 싸우거나, 숨어 있다가 기습 공격으로 적의 숨통을 단번에 끊을 수도 있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들을 피해 다니며 풀이나 과일을 먹어야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하다. 이 게임에서는 약육강식의 단순한 규칙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략하고 직관적인 조작
한글화에 간단한 조작은 처음 게임을 접했더라도 이해가 쉽다. 아니, PS3라는 기기가 생소한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시점은 지상에서는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쿼터뷰, 높은 곳에서는 위로 내려다보는 탑뷰를 채용하고 있다. 덕분에 오락실에서 하던 횡 스크롤 액션 게임 느낌이 들기도 하는지라 큰 어려움은 없다. 더구나 2인용까지도 지원하기 때문에 친구나 형제끼리 즐기는데도 충분하다. 실제로 콘솔 게임과는 담쌓은 누나와 함께 해봤는데 어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쳐 곤란하기까지 했다.
이 게임은 ‘생존’이라는 단순 명료한 목적만 존재한다. 단, 생존에는 생명력과 포만감이 중요하다. 이 생명력은 적에게 공격당하거나 오염지역에 들어갔거나 포만도가 ‘0’이면 줄어들게 된다. 이 목적 아래에 이동, 포식, 점령, 번식하게 된다. ‘이동’은 적에게 들키지 않거나 먹이 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포식’은 포만도를 올리기 위한 행동이다. 포만도는 먹이나 물을 먹으면 차오르며, 평상시에는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이 포만도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점령’은 각 구역을 자기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며, 지친 몸을 휴식시키거나 번식을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이다. ‘번식’은 세대교체를 하는 것으로 생존한 지 15년이 지나면, 능력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암컷을 만나 번식에 성공하면 다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지만, 일정 능력치를 물려주기에 더욱 강한 동물을 만들 수 있다. 여러 번 세대교체를 거치면 지랄견 비글로도 사자를 잡을 수 있는 게임이다.
심하게 갈리는 호불호
게임은 크게 2가지 모드로 이루어져 있다. 인류가 사라진 비밀을 밝혀내는 스토리 모드와 한 동물을 선택해 무작정 오래 살아남는 서바이벌 모드를 즐길 수 있다. 서바이벌 모드에서 새로운 동물을 얻고, 그 동물로 새로운 스토리를 진행하는 구조로 서로 번갈아가며 즐겨야 한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한지라 서바이벌 모드를 가장 많이 즐기게 될 것이다.
생존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1~2시간 정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게임이겠지만,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여기에 동물이 주축인 게임이다 보니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재밌는 게임이지만,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끌리지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패키지 게임이 아닌 SEN(소니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 다운로드 전용으로만 나올 계획이었던 게임인지라 그래픽이나 즐길 거리가 다소 부족한 것도 단점이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즐겨 봐도 좋다. 그 정도로 이 게임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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