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공연장을 즐겨 찾는다. 유명한 가수보다는 인디 밴드나 직장인 밴드의 공연을 주로 감상하는데, 프로 못지않은 실력과 열정에 항상 배움의 자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국내 최고의 록밴드 부활의 전국투어 콘서트‘Purple Wave’에 다녀온 뒤 궁금한 점이 생겼다. 한 번의 공연을 치르기 위해선 어떤 장비가 필요하며, 얼마나 많은 인원과 장비가 필요한 걸까? 버스킹 공연처럼 기타와 앰프 하나면 충분할까?
정환용 기자
정환용 기자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NO’다. 수많은 직장인 밴드들의 소규모 공연만 해도 다양한 악기들과 악기별 앰프, 모니터링용 스피커, 여러 개의 마이크까지 무대 위에서만 수십 가지의 장비들이 모여서 하나의 소리를 만든다. 여기에 공연에 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화려한 조명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열정이 가득한 록 콘서트가 될 줄 알았나!? 아무리 좋은 기타와 앰프가 있어도, 아무리 연주가 훌륭해도 그 소리를 메인 스피커로 뽑을 수 없다면 별무소용이다. 작은 합주실에서 연습할 때조차 소형 PA가 필요한데, 대형 공연장은 오죽하겠는가. 이 기사를 보기에 앞서 공연의 필수 아이템인‘PA 시스템’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PA(Public Address) 시스템이란?
당신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한다고 가정하자.( “저는 노래 못 하는데요”식의 식상한 변명은 잠시 접어두길) 있을 리 없는 여자친구 앞에서 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해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겠지? 하지만 그 대상이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앞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주기 위해 당신은 발라드를 목이 터져라 불러야 하고, 무대를 망치는 건 시간문제다.
이 때 필요한 것이‘증폭’이다. 당신의 모기만한 음량으로 말해도 공연장의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당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키워주는 매우 고마운 장비가 PA의 역할이다. PA 시스템은 스피커와 믹서로 나뉘는데, 믹서는 마이크 뿐 아니라 각종 악기에 연결된 앰프까지 모두 연결하는 전문 음향 콘솔이다. 보통 32개 이상의 채널을 소화할 수 있고, 각 채널에 연결된 장비마다 주파수 별로 음향을 조절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야마하의‘EMX 88’시스템으로 8채널 입력이 가능한 범용 믹서다.
감성 록밴드 부활을 만나다
기자는 지난 6월 8일 울산에서 열린 부활의 전국투어 콘서트‘Purple Wave’를 다녀왔다. 부활의 이번 전국투어 타이틀인‘퍼플 웨이브’는 지난 해 발매된 부활의 13집 앨범 이름이기도 하다. 20년이 넘게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활은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 보컬 정동하, 베이시스트 서재혁, 드러머 채제민이 모여 있는 4인조 록밴드다. 부활의 팬인 기자는 지인을 통해 전국투어 콘서트를 취재할 기회를 얻어 울산 KBS홀을 찾았다. 이번 취재는 그룹 부활이 아닌 공연 장비가 주인공이다. 공연 전날부터 각종 무대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해 당일 멋진 공연을 시작할 때까지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공연 전날인 6월 7일 오후에 울산 KBS홀 공연장에 들어섰다. 2천여 석규모의 공연장에는 이제 막 장비들이 들어와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국투어 내내 해 왔던 일이라는 진행요원의 손놀림이 익숙해 보였다.
스태프들이 무대의 좌우측에 배치되는 메인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다. 이번 전국투어에 사용된 메인 스피커는 코다오디오 LA12 시스템으로, 총 16조의 메인 스피커와 4조의 베이스 우퍼가 사용된다. 모니터 스피커도 모두 코다오디오 스피커로 구성돼 있다. 한 쪽에 LA12 스피커가 8개씩 쌓이고, 베이스 우퍼가 좌우 2조씩 배치돼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게 된다.
무대 정면의 뒤쪽에 배치된 콘솔에서 각 채널에 연결된 음향 기기들을 정밀하게 조정하고 있다. 우측에 보이는 장비가 이번 공연의 소리를 담당하는 믹서, 디지코 SD8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연장에 믹서가 없다면 제대로 된 사운드 아웃풋을 잡을 수가 없고, 악기나 BGM의 출력이 제멋대로여서 도저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SD8은 각 채널별 이퀄라이저를 기본 장착된 모니터를 통해 12단계로 세부 조절할 수 있다. 드럼 세트에만 약 10개의 마이크가 들어가는데, 음향 감독은 믹서에 연결된 모든 인풋의 이퀄라이저를 가장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이 작업에는 별도로 맥OS에서 구동하는 스마트라이브, 큐랩 등의 음향 프로그램이 사용된다.
영상 담당 엔지니어가 공연에 사용될 전광판의 컨트롤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다. 영상 감독은 무대 뒤에 설치되는 대형 전광판의 영상과 BGA, 그리고 공연 기록을 담당한다. 사람 키와 비슷한 높이의 LED 패널을 2열로 설치해 멀리 있는 관객들도 멤버들을 볼 수 있으며, 음악과 매치되는 감각적인 비주얼 워크도 전송해야 한다. 동시에 공연 실황을 십수개의 모니터로 확인하며 카메라에 담는 기록 작업도 병행해야 하기에 멀티태스킹이 꼭 필요하다. 그래픽 소스의 재생에는 레졸룸같은 전문가용 프로그램도 사용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곰플레이어’를 사용한다고.
그래픽 소스 재생 프로그램 ‘레졸룸’. 다양한 영상 효과들을 엔지니어가 원하는 대로 aLED 디스플레이에 재생해 준다.
공연장에는 보통 두 대의 믹서가 필요하다. 밖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소리를 내 주는 메인 스피커, 그리고 무대 안에서 주인공들의 연주를 들려주는 모니터 스피커에 각각 한 대씩 연결된다. 당연히 공연장 전체를 울려 주는 소리와 밴드 멤버들이 듣는 소리는 그 종류가 다르다.
모니터 믹서는 메인 콘솔과 같은 브랜드의 SD9을 사용한다. 기본 PC 시스템과 전용 프로그램 구동을 위한 OS가 설치돼 있고, 추가 모니터를 연결해 다양한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때로 믹서에 아이팟 등의 음향기기를 연결, 재생해 음향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기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놀랐던 부분이 바로 조명이다. 무대에 설치된 작은 컬러 조명부터 무대 정면을 밝혀 주는 핀 조명까지 모든 라이트를 하나의 콘솔로 컨트롤한다. 또한, 무대에 서는 멤버들의 위치에 맞춰 각 조명마다 하이라이트를 줄 수 있도록 프리셋을 설정해 두고, 연주되는 곡에 적합한 라이트 워크를 위해 컨트롤 노브들을 마치 게임하듯 끊임없이 위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TV에서 보던 조명의 움직임들이 알고 보니 모두 사전에 설정된 움직임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서로 다른 장비들, 공통점은?
혹시 사진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는지? 콘솔, 스피커, 영상 등 거의 모든 장비는 개별적으로 움직이지만, 공통적인 운영 시스템으로 애플의 맥북프로 레티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PA 팀은 스피커의 위치에 따른 소리의 아웃풋을 보고 메인 스피커와 베이스 우퍼의 튜닝을 진행했고, 두 콘솔 파트에서도 모두 맥북프로에 설치된 음향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장의 라이브 사운드를 녹음할 때는 훨씬 높은 사양의 PC가 필요하기 때문에 맥 프로 급의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엔지니어에게 물어보니 일반 PC보다 맥 시스템의 안정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사용되던 제품은 모두 맥북프로 레티나 15인치였다.
공연 당일, 음향 감독이 최종 사운드 체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때가 음향 스태프에게 가장 긴장되는 때일 듯하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의 앰프와 드럼에 마이크가 연결되고, 각 멤버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음향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음역대 별로 소리를 내며 주의 깊게 조절해 나간다. 베이시스트 서재혁은 모니터에서 고음 영역대가 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고, 이는 메인 콘솔과 모니터 콘솔에서 동시에 조절해 만족스런 소리를 만들어냈다. 음향은, 공연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음향 감독의 대단함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처음 인사드렸을 때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던 음향 감독은, 리허설이 진행되며 시종일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하다못해 메인기타가 아닌 세컨 기타의 소리도 오늘 연주할 노래들에 가장 적절한 음량과 음향을 찾아내는 그는 청음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대단해 보였다.
관객이 앉을 의자 배치부터 아주 자세히 들어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한 조정을 마친 사운드까지, 모든 공연의 준비가 끝났다. 공연 시작 30분여를 남기고 리허설까지 모두 마친 스태프들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목도 축이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2회가 예정돼 있었는데, 서너 시간의 공연을 위해 30여 명의 전문 스태프들이 꼬박 하루를 공들여 멋진 콘서트 스테이지를 완성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오후 3시를 약간 넘겨 공연이 시작됐고, 이곳을 찾은 관객들이 부활의 음악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공연 중간중간 메인 콘솔과 스테이지 콘솔에서 엔지니어들의 바쁜 손놀림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그저 무대와 공간이 전부였던 곳을 록 콘서트 스테이지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열정은 기자의 눈과 가슴에만 남기기로 했다.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은 가수만을 바라보고 환호하겠지만, 그들이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그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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