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잠입’(INFILTRATION)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선우 선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스트리트 파이터’ 프로게이머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 있는 격투 게임은 주로 ‘더 킹 오브 파이터즈’나 ‘철권’이 대세였고,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도 이 게임들이었다.
이선우 선수도 그동안 다양한 격투 게임을 접해왔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한글화 출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고 밝혔다. 2010년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3위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고 2011년부터 다양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현재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이하 울스파4)에서 손꼽히는 최상위 랭커다.
이전까진 별도 스폰서 없이 활동했지만, 게이밍 기어 업체로 잘 알려진 Razer(레이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Razer의 e-Sports 공동체인 Team Razer(팀 레이저) 소속 프로게이머가 됐다.
11월 13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이선우 선수를 만나 궁금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격투 게임을 좋아하고 이선우 선수의 팬이었기 때문에 기자의 사심 가득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왜 닉네임을 ‘인생은 잠입’이라고 지었나?
이선우 선수: 원래 ‘메탈 기어 솔리드’ 같은 잠입 액션 게임을 좋아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닉네임을 쓰게 된 것 같다.
격투 센스가 남다른데 연습만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다. 특별한 방법이나 마음가짐이 따로 있는지?
이선우 선수: 상대가 누구든 전력을 다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사실 격투 게임에서 적당히 봐주는 것 자체가 실례이기도 하다.
격투 게이머로써 상당히 공감된다. 소위 격투 게임은 ‘깨지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렵다. 반대로 고수를 만나면 대차게 깨져도 할 말 없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여러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던 상금에 대해 알고 싶다.
이선우 선수: 대부분 대회가 참가비를 걷어 우승자에게 몰아주는 형식인데 어떤 대회에서는 우승 상금이 약 60달러 정도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품은 자동차다. 캡콤에서 ‘도요타 86’을 경품으로 줬는데 한국까지 운반하는 것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중고로 처분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지만, 경품보단 상금을 주는 쪽이 제일 좋은 것 같다.
-Team Razer-
이번에 Team Razer 소속이 됐는데 오히려 그동안 소속팀이 없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계기와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이선우 선수: 아무래도 이쪽 일을 생업으로 하려다 보니 소속팀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이쪽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프로게이머를 통해 소속팀을 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싱가포르의 시안(Xian)이었다. 시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정말 빠르게 진행이 돼 여기까지 온 것 같다.
Team Razer 소속 스트리트 파이터 프로게이머가 많이 있는데 다들 잘 아는 사이인가? 또 대화는 주로 어떤 언어를 사용해서 하는지?
이선우 선수: 앞서 말한 시안과는 잘 아는 사이다. 그 외에 일본의 후도(Fuudo) 선수나 각트(Gackt) 선수가 있는데 자주 본 사이지만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대화를 많이 나눠보진 않았다. 대화는 잘은 못하지만 영어를 사용한다.
이쯤 되면 사용하는 스틱이 궁금하다. 당연히 Razer 스틱을 사용하는가?
이선우 선수: 그동안 여러 가지 스틱을 사용해 왔지만, 현재는 Razer Atrox(레이저 아트록스)를 사용하고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5-
얼마 전 스트리트 파이터 5(이하 스파5) 2차 베타가 진행됐다. 기자도 상당히 재밌게 즐겼는데 프로게이머 측면에서 본 스파5는 어떤가?
이선우 선수: 게임 진입 장벽 자체가 낮아져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반면, 파고들 요소가 많지 않아 기존 울스파4 고수 사이에서는 불만이 더 많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점은 좋은 것 같다.
확실히 지스타 부스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즐기는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아직 모든 캐릭터가 나오진 않았지만 스파5에서 주력으로 점찍은 캐릭터가 있는지?
이선우 선수: 여러 캐릭터를 써보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내쉬’다. 기술 동작도 그렇고 생김새, 설정 등 모두 맘에 든다. 외국에서는 현재 공개된 15명 캐릭터 중 최약체로 꼽히고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선우 선수는 이에 반박하듯 다음 날 지스타 2015 ‘스파5 이벤트 매치’ 결승전에서 내쉬를 선택해 울스파4 세계 랭킹 1위 모모치 선수의 베가와 카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번 스파5가 PS4와 PC판 동시 발매된다. 그동안 콘솔판을 주력으로 해왔을 텐데 이번에는 PC판도 다룰 것인지 궁금하다.
이선우 선수: 국내에서도 스파5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고 PC판과 동시 발매인 만큼 몇몇 대회는 PC판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PC판 대회도 염두에 둬야하기 때문에 양쪽 다 연습하려한다. 여담으로 국내에서도 스파5에 대한 인지도가 늘어나 많은 사람이 즐기고 대회도 많이 열렸으면 한다. e-Sports화까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캡콤컵-
캡콤컵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종목으로는 우승한 전적이 없는데 당연히 올해 목표는 우승인가?
이선우 선수: 우승을 목표로 연습 중이지만 운도 상당히 따라줘야 할 것 같다. 11월 말에 PS4로 ‘메탈 기어 솔리드 5 팬텀 페인’이 한글로 나오는데 캡콤컵 준비 때문에 못 즐기는 것이 가장 아쉽다. 캡콤컵 이후에도 내년 2월에 출시될 스파5 때문에 한동안 계속 바쁠 것 같다.
울스파4에서 고우키, 디카프리, 춘리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깜짝 캐릭터를 고르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번 캡콤컵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깜짝 캐릭터가 있는지?
이선우 선수: 아직 캡콤컵이 진행되지 않아 미리 밝힐 순 없지만, 따로 준비하고 있는 캐릭터는 있다. 하지만 캐릭터마다 상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깜짝 캐릭터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공적인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간만에 사심이 가득했던 인터뷰를 한 것 같다. 캡콤컵에서 우승하길 빌고 앞으로 출시될 스파5에서도 좋은 모습을 계속 이어나가길 빌겠다.
이선우 선수: 재미있는 인터뷰였고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캡콤컵은 1년간 치러진 국제 대회 우승자와 상위 랭커들이 한자리에서 붙는 왕중왕전이다. 오는 12월 5~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총 32명의 울스파4 초고수들이 2015년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격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선우 선수와 이충곤 선수(풍림꼬마, Poongko)가 캡콤컵에 참가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건투와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