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은 시행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정부가 대놓고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고 이동통신사의 배를 채워주려 했다는 것이다.
단통법의 시행 취지는 ‘이통사간 과장된 보조금 지급으로 고객들이 차별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만, 단말기 보조금 상한선을 33만 원으로 제한해 버려 모든 국민이 단말기를 비싼 가격에 살 수 밖에 없게 됐다.
즉, 국민 일부가 호갱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어 버린 법이 단통법이다. 어느덧 단통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고, 이에 대한 현재 상황을 되짚어보는 자리를 가져봤다.
무엇이 바뀌었나?
먼저 단통법 시행 후 기업들의 위상이 달라졌다. 단통법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쓴 맛을 본 반면, 이통사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실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은 단연코 팬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잘 나가는 삼성전자와 달리 국내 시장에만 몰두해야 하는 특성상 팬택은 단통법 시행 후 실적이 크게 악화돼 갔다.
사실 단통법 시행 전에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단말기 보조금을 확대해 재고를 털어 기사회생할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팬택은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을 확대할 수 없었고 더 치열해진 프리미엄 브랜드 싸움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LG전자의 사정도 별반 다를 바 없다. LG전자는 단통법 시행에 대해 자신감을 비쳤지만, 올해 2분기 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의 영업실적은 2억 원에 그쳤고 3분기는 적자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제조사들이 몰락하게 된 것은 단통법으로 스마트폰 판매량이 저조해진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유통시장 침체까지 불러와 중소 판매점 중 30%(약 3,500곳)가 폐업했다.
반면, 이통사들은 단통법이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비아냥처럼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이통 3사는 단통법 시행으로 마케팅 비용이 감소한 덕분에 지난 3분기 총 영업이익은 1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단통법 시행 후 이통 3사는 데이터 중심의 다양한 요금제와 선택약정할인 등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차별화를 내세웠지만, 좋은 혜택을 받기 위해선 고가 요금제를 가입해야하므로 가계 통신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여기에 계약 해지 위약금이 단통법 시행 이전보다 평균 3.6배 증가해 쉽사리 번호이동도 할 수 없어졌다.
단통법으로 딱 하나 좋아진 점은 있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힘들게 발품 팔거나 인터넷 스팟 판매를 할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 또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가 된 지인들이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면 대답하기도 참 편해졌다. ‘그냥 아무데서나 사도 똑같아’ 한마디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자화자찬
단통법을 만들어 시행에 밀어 붙인 정부는 1주기를 맞아 자화자찬하기에 급급했다. 물론 고객 간의 보조금 차별을 받는 일은 줄었지만, 모든 사람이 비싸게 살 수 밖에 없는 호갱화를 만들었다.
출고가가 80만 원을 넘어서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보조금을 상한치까지 받아봤자 50만 원을 넘어서므로 최신 스마트폰 평균 구매가는 크게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이통사는 비교적 출고가가 50만 원 이하인 중고가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내세워 가계 통신 요금이 줄어든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켰다.
여기에 이동통신 서비스와 요금을 규제하는 정부부처들이 단통법 시행 1주년에 대해 “통신비 인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정작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지원비는 10% 가량 늘어났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은 미래부와 방통위가 과장급 이상에게 지원하는 통신비 지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1인당 지원비가 올해 들어 각각 9.3%, 11.5%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미래부 직원 중 이른바 ‘업무폰’을 쓰는 직원의 1인당 통신비(해외로밍 제외)는 지난해 월 평균 5만4,474원(154명)이었으나 올해 들어서는 5만8,456원(149명)으로 4,000원 가량 증가했다. 방통위의 통신비도 6만400원(37명)에서 6만8,998원(36명)으로 8,600원 정도 늘었다. 두 부처 직원들이 단통법으로 인한 통신비 인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최민희 의원은 “단말기유통법 이후 국민들 가계통신비가 줄었다고 큰 소리 치던 미래부가 정작 본인들 통신지원금을 늘린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며 “가계통신비가 줄었으면 당연히 각 부처의 통신비지원금도 본인들 주장처럼 줄었어야 맞는데 오른 것을 보면 가계통신비가 줄었다는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단통법의 실효성을 지적하며 “많은 국민들이 단통법을 전국민 호갱법이라고 조롱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며 “모든 소비자가 단말기에 비싼 값을 지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보조금 경쟁이 완화돼 통신사 마케팅비는 하락했지만 데이터 요금제 실시를 제외하면 요금 인하가 없는 현실에서 기본요금제 폐지는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불법 보조금 음지화
그렇다고 불법 보조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심지어 비웃듯이 단통법 1년이 넘어서도 불법 보조금이 판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SK텔레콤이 7일간 영업정지를 개시했다. 이 사이 통신기기 관련 온라인사이트에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의 암호문이 쏟아졌다. ‘수육 끓이는 시간 21분’, ‘쥐 4마리 굽는 시간 4분’, ‘공책 5권 사러 가는 시간 38분’ 등 해당 용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정도다.
앞에서부터 풀이하자면 ‘갤럭시 S6 21만 원’, ‘LG G4 4만 원’, ‘갤럭시 노트 5 38만 원’에 판매한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초성체를 이용한 은어로 페이백은 ‘표인봉’, 현금완납(현완)은 ‘현아’, 59요금제 가입은 ‘59번 욕먹었다’는 말로 통한다. 또 페이백을 지급하는 유통점의 위치는 ‘좌표’라고 언급한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만들어낸 암호였지만, 단통법 1년이 지난 지금은 업계 은어로 굳어졌다.
정부가 단통법 시행으로 이통사 간 과도한 불법 출혈 보조금 경쟁 등이 사라지고 있다고 자평한 것과 달리 여전히 불법 보조금 전쟁이 온라인 등을 통해 보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전보다 불법 보조금이 음지로 숨어들어 전보다 혜택 받는 사람은 더 줄었다.
방통위가 지난해 5월부터 ‘단말기유통조사단’을 꾸리는 등 현장 단속을 하고 있지만, 이 같은 온라인을 통한 불법 보조금 지급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더구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불법인지 증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게릴라식으로 잠깐 진행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이미 상당수 판매점이 오프라인에서는 단통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영업하면서 온라인에서는 대량의 불법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명무실한 단통법이나 속수무책인 감독 당국을 한탄하면서 현재 상황에 대해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시장 흐름에 맡기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비난했다.
단통법은 처음 의도했던 취지와 현재 상황은 누가 생각해도 많은 괴리감이 있다. 일부 성과가 있었다고 해도 해당 법안이 성공적이라고 보는 것은 정부와 이통사가 전부일 것이다. 단통법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판도 당연하다.
시행된 지 겨우 1년 된 법안을 무조건 폐지하는 방법도 무리지만, 지난 1년간을 돌이켜 보면 그대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행착오는 1년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단통법의 전면적인 재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