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 에어로 vs 맥 아쿠아 윈도 비스타가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이들이 화려한 인터페이스에 박수를 보냈다. 비스타는‘윈도 에어로’(Aero)라는 새로운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통해 윈도XP와차별화를꾀했다. 바탕화면의 휴지통 아이콘이 투명해서 쓰레기가 찼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프로그램 창과 작업 표시줄이 반투명해서 배경이 슬그머니 드러나는 것도 모두‘에어로’덕분이다. 탐색기의 ?(최소화), □(최대화), ×(닫기) 아이콘에커서를대면형광빛이은은하게감도는것도마찬가지다. 바탕화면도 화려하다. 최소 해상도가 1,920×1,440픽셀인 배경 그림들은 웬만한‘예술 사진’저리 가라다. 윈도 XP와 달리 클릭 한 번이면 배경 그림이 바뀌는‘단순함’도 칭찬할 만하다. 바탕화면 오른쪽에자리잡은두께3cm의‘윈도사이드바’는날씨, 시계, 주식, 환율등을실시간으로알려준다. 이제 맥 OS X로 눈을 돌려보자. 비스타와 다른 점은 윈도의 작업표시줄에 해당하는 메뉴 막대가 화면 위에 있다는 것이다. 비스타는 현재 띄워놓은 프로그램들의 아이콘이 작업표시줄에 표시되지만, 맥 OS의메뉴 막대는 현재 작업하는 프로그램의 메뉴를 띄운다. 예를 들어‘퀵 타임’을 실행하면 동영상 플레이어에관한메뉴가,‘ 미리보기’를열면그림관련기능들이나타나는것이다. 메뉴 바 오른쪽에는 윈도처럼 볼륨과 시계가 보인다. 여기에 글자 입력 아이콘과 함께 시스템의 모든 자료를 검색하는‘스팟라이트’가 덧붙은 게 특징이다. 눈여겨볼 것은 화면 아래의 독이다. 아이튠, 사파리(웹 브라우저), 주소록, 퀵플레이어, MSN 메신저 등 맥 OS에 설치된 프로그램들이 등록된 곳으로 여기서프로그램을 띄우면아이콘밑에▲가달라붙는다. 하지만 윈도처럼 작업표시줄에 아이콘이 표시되는 게 아니어서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몇 개 안될 때는 상관없지만 동시에 10여 개 이상을 띄우는 이른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다. 바탕화면 vs 데스크탑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갖는‘바탕화면 바꾸기’는 어떻게 다를까. 윈도 비스타는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누른 뒤 개인설정 → 바탕화면 배경을 누른다. 그리고‘바탕화면배경’창에서마음에드는 그림을 마우스로 한번 누르면 바탕화면이 바로 바뀐다. 또한후보 그림에 커서를 대면 팝업 창이뜨면서크기와해상도를알려준다. 맥 OS X도 전체 흐름은 비슷하다.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뒤‘데스크탑 배경 변경’을골라‘데스크탑 & 화면 보호기’창이 열리면‘데스크탑’탭에서 필요한 그림을 고른다. 비스타처럼마우스를한번만눌러도배경그림이 바뀌는것이다. 그림을 바꾸는 과정은 비스타보다 한 단계가 적지만 그림에 커서를 댔을 때 비스타처럼 크기나 해상도 등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경 그림(시스템에 기본적으로 등록된 것)은 윈도(36개)보다많은 47개다. 자연 14개, 식물 10개, 흑백 5개, 추상 8개, 단일 색상 10개로 종류가 많고 해상도도 2,560×1,600을 자랑한다. 마우스 오른쪽 vs 오른쪽 버튼 윈도 이용자에게 익숙한 기능은 마우스 오른쪽 메뉴다. 어디서든마우스 오른쪽 버튼만 누르면 필요한 메뉴들이 좌르륵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애플맥OS는 어떨까? 먼저,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보았다. 비스타는아이콘 정렬과 복사, 붙여넣기, 새로 만들기, 개인설정 등이 나타난다.‘ 새로 만들기’는 파일이나 폴더를 각 형식에 맞게 만드는 것이고,‘ 개인설정’은 윈도 색상이나 배경그림, 화면보호기, 소리, 마우스 커서, 테마를 관리한다. 맥 OS X는 메뉴가 좀 단순하다. 폴더만 새로 만들 수 있을뿐 파일은 안 되고,‘ 데스크탑 배경 변경’도 배경 그림과화면 보호기만 다룬다. 그 대신‘스크립트’라고 하는 소프트웨어 로봇을 덧붙였다. 스크립트는 매일 하는 단순 작업을 처리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도규멘트 폴더를 백업하는 것이다. 바탕화면에서 이런 반복 작업을간단하게정할수있는것이다. 이번에는 응용 프로그램,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가장 많이 쓰는 웹 브라우저에서 마우스 오른쪽메뉴를 비교해 봤다. 먼저, 윈도 비스타의 익스플로러 7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렀더니 앞뒤로 가는 것은 물론 웹페이지를 복사하거나 즐겨찾기에 더하고, 인쇄를 하고, MS엑셀로 보내는 것까지 푸짐하게나타났다. 반면에 맥 OS의 사파리는 앞뒤로 가는 것과 다시로드, 소스 보기, 페이지를 저장하고 인쇄하는 정도에 그쳤다. 웹페이지에 있는 그림을 눌렀을 때도 비스타는 저장, 인쇄, e-메일보내기, 바탕화면에 저장하기가 되지만 맥 OS X는 이미지를 저 장하는것외에는이렇다할기능이없다. 마지막으로 바탕화면에 있는 폴더를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눌러보았다. 비스타는 선택한 항목을 열거나 복사하기, 지우기, 보내기, 이름 바꾸기 등 갖가지 관리 메뉴들이 보인다. 그러나 맥 OS X는 스크립트 기능을 기본으로 가져가면서 복사와 지우기 정도가덧붙는다.‘ 이름바꾸기’도없다. 그렇다면 맥 OS에서는 파일 이름을 어떻게 바꿀까? 파일 아이콘을 고른 뒤 다시 한 번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누르면 이름 부분이 파랗게 바뀐다. 이때 키보드를 두드리면 원래 이름이 사라지고 새 이름이붙는다. 사이드 바 vs 대시 보드 맥 마니아들이 윈도 비스타를 공격할 때 자주 써먹는 메뉴가‘사이드 바’다.“ 2년 전에 나온 맥 OS X의 대시 보드를 베낀 것이 사이드바”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윈도 마니아들은“생김새나 기능이 많이 다르다”면서어이없다는반응이다.먼저, 윈도 비스타의 사이드 바를 보자. 바탕화면 오른쪽에 자리 잡은 두께 3cm의‘윈도 사이드 바’는 시계, 슬라이드, 날씨,주식, 환율 등 이른바‘가젯’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유틸리티를 가득 품고 있다. 가젯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가져와 실시간으로 띄워주므로이용자는 가만히 앉아서 갖가지 컨텐츠를 받아볼수있다. 맥 OS X의 대시보드는 생김새나 성격이 비스타의사이드 바와 다르다. 대시보드는 화면 아래쪽에 놓이는 데다 비스타의 사이드 바처럼 늘 떠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단축키로불러온다. 대시보드에 있는 각각의 항목을‘위젯’이라고 하는데 주소록, 캘린더, 게임, 스티커, 시계, 단위 변환기, 번역, 계산기, 날씨 등 작지만 요긴한유틸리티로채워졌다. 대시보드에서 자주 쓰는 것을 바탕화면으로 끄집어놓으면 나중에 대시보드를실행시켰을 때 그것들만 보인다. 더 많은위젯을 띄우려면 화면 왼쪽에서 × 버튼을, 인터넷에서 더 많은 위젯을내려받으려면‘위젯관리’를누른다. 이밖에도 차이가 많다. 비스타도 가젯을 바탕화면으로 끄집어내거나 바탕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투명도를 조정할 수도 있다. 기본가젯13개외에인터넷에서 더많은것을내려받을수있다. 플립 3D vs 지니 화려한 인터페이스는 윈도 비스타의 자랑이다. 그 중의 하나가‘플립(flip) 3D’다. 윈도 로고 키(또는 시작키)와 Tab 키를 누르면 현재 띄워놓은창들이 45도로 돌아서면서 입체적인 화면이 펼쳐진다. 이 상태에서 Tab 키를 누르면 맨 앞의 창이 뒤로 빠지면서 한 칸씩앞으로 밀려 나온다. 덕분에 여러 창이 겹쳐있어도 쉽게 구분이 되지만 그 이상의 기능은없다. 맥OS X는‘지니’가특징이다. 윈도를닫기위해-(최소화) 버튼을 누르면 램프의 요정처럼 창이독으로 빨려 들어간다. 반대로 독에서창을 띄울 때도 연기처럼 빠져나온다. 프로그램이 닫힐 때와 열릴 때 램프의 요정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이를‘지니 효과’라고 한다. 창을 닫거나 띄울 때 Shift 키를 누르면 속도가 1/5로 줄어들므로색다른분위기를맛볼수있다. <Alt + Tab> 키 vs 익스포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띄워놓았을 때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비스타에는‘플립 3D’가 있긴 하지만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작업표시줄을 확인하는 게 가장 좋다. 작업표시줄의 아이콘에 커서를대면 미리보기 창이뜨므로쉽게 확인된다. 또 하나는 <Alt + Tab> 키다. 윈도의 아주 유명한 단축 키로서, 현재 띄워놓은 프로그램 목록을 모두 보여준다. 윈도 XP까지는 <Alt + Tab> 키가 그냥 이름만 보여줬지만 윈도 비스타에 이르러미리보기가된다. 맥 OS에서는 당연히 <Alt + Tab> 키가 먹히지 않는다. 대신‘익스포제’(Expose)가 있다. 어떤 이는“익스포제를 겨냥한 것이 플립3D다”고하는데사실이든아니든인터페이스측면에서그만큼의미가 있는 기능이다. 익스포제는 여러 개의 창을 키 하나로 가지런히나열시킨다. 여러가지작업을하다가프로그램들을다보고 싶다면 F9 키를 누른다. 그러면 각창들이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겹치지 않는 위치로 후다닥 옮겨간다. 트레이 vs 트레이 윈도 작업표시줄의 오른쪽에 시계가 표시된 곳을‘트레이’라고 한다. 맥 OS는 특별한 이름이 없지만 역시‘트레이’라고 부르자. 윈도 트레이와 맥 트레이는 기본적으로 볼륨 아이콘과 시계를가지고있다. 하지만공통점은여기까지다. 윈도 비스타는 트레이에‘자동 실행 프로그램’(PC가 부팅될 때 저절로 실행되는 프로그램) 아이콘을 표시한다. 자동 실행 프로그램이많아서 트레이가 꽉 차면〈나 〉아이콘으로 숨기거나 펼친다. 시계와볼륨도윈도XP와는사뭇다르다. 시계는한국시각외에두곳의시각을더알려주고, 볼륨아이콘도프로그램별로소리를따로조절한다. 맥 OS X는 모든 프로그램이 독에 등록되므로 트레이가 깔끔하다. 시계는 비스타처럼 여러 개를 보여주지 않지만 그 대신 디지털과 아날로그로표시한다. 하지만 아날로그는 바늘이 너무 작다. 여기에 한글이나 영문 입력 아이콘과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검색하는‘스팟라이트’가 비스타와 차별화를더한다. 스팟라이트 vs 데스크탑 검색 맥 OS X의 스팟라이트는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문서, e-메일, 주소록, 그림, 사진, 영상, 음악, 응용프로그램을찾아주는것으로, 아이튠즈에서 곡명, 작곡가, 앨범 등으로 음악을 찾아주던 기능을 업그레이드했다. 파일 이름이나 작성자, 문서 내용의 일부를 검색어로쓰므로 필요한 데이터를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예를 들어‘설날’이라고치면이단어가들어간문서, e-이메일, 주소록, 사진, PDF 등을 모조리 보여준다. 사진은 어떤 카메라로 언제 어떤 노출로 찍었는지도검색한다. 스팟라이트는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 먼저, 트레이의 돋보기아이콘을 눌러 검색어를 쓰면 결과가 표시된다. 이 결과를 누르면실제 내용이 보여주는 창이 열리는데, 그 오른쪽에도 스팟라이트가 있다. 맥 OS X는 어떤 창이든 오른쪽에 스팟라이트가 있다고보면 된다. 맥 OS에 스팟라이트가 있다면 윈도 비스타는 데스크탑 검색을 내세운다. 이 대목에서도 맥 마니아들은 윈도 비스타의 데스크탑 검색이 맥 OS X의스팟라이트를 베꼈다고 하지만 MS는 이미 2003년 가을 롱혼(비스타의 당시 코드 네임) 프리뷰에서 새로운 검색 기능을 시연한 적이있다. 그렇다면 윈도 비스타의 데스크탑검색은무엇이다를까?문서 이름은 물론 그 안의 내용과크기, 태그로자료를찾는다는점은 스팟라이트와 같지만 인터페이스와 작동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사진을 예로 들면“언제 어디서 누구와 촬영했다”는 내용을‘태그’로 달면‘언제’‘어디서’‘누구’라는각각의 키워드로 원하는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태그 내용은 탐색기에서 자유롭게 등록하고‘검색 상자’도 시작메뉴부터탐색기, 미디어플레이어 등 곳곳에 마련해 어디서든검색을할수있다. 애플의 스팟라이트는 검색 결과를 응용 프로그램, 시스템, 문서,폴더, 메일 순으로 표시한다. 물론이 순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반면에 비스타는 검색 결과를 가상 폴더로 만들어 보관한다. 덕분에 한번 검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키워드에 대한정보를 언제든지 다시 열어볼 수가 있는것이다. 매킨토시 HD vs 컴퓨터 ‘매킨토시 HD’는 응용 프로그램, 문서, 동영상, 데스크탑 등 맥 시스템의 전체 내용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윈도 비스타의‘컴퓨터’와비교된다. 인터페이스는매킨토시HD가훨씬단순하다. 먼저, 파일 표시 방법을 비교해보자. 매킨토시 HD는 아이콘 보기, 목록 보기, 계층 보기 3가지다.‘ 아이콘 보기’는이름그대로 폴더나 파일의 아이콘만 표시하고,‘ 목록 보기’는 이름과수정일, 크기, 종류까지 띄운다.‘ 계층 보기’는 그 폴더 안에들어 있는 내용까지 보여준다. 만약 여기서 그림 파일을 고르면미리보기와함께확장자, 크기, 생성일, 수정일, 크기를 알려준다. 반면에 비스타의 컴퓨터는 옵션이 더 많다. 아이콘만 해도‘아주큰’‘큰’‘보통’‘작은아이콘’4가지이고그밖에도‘목록’‘자세히’‘나란히 보기’가 있다. 사진을 예로 들면‘아주 큰’‘큰’‘보통’은 그림을 미리보기해주고‘작은 아이콘’은 그냥 이름만 표시한다. 하지만 어떤 옵션이든 탐색기 밑에 날짜,크기, 제목등이표시된다. 디렉토리 구조도 매킨토시 HD가 간단한다. 폴더를 열어 하위 디렉토리로 갈 때는 오른쪽에 서브 창이 열리면서 이동 경로가 생긴다. 예를 들어,5단계로이동을한다면맨왼쪽의루트부터오른쪽까지5개의디렉토리가생기는것이다. 이에대면비스타의디렉토리구조는대단히독특하다. 윈도XP에서쓰던슬래쉬(/) 대신 화살표(→)를 가져왔는데, 링크 개념을 도입한 화살표는 다른 디렉토리로 이동하는 지름길이다. 화살표를 누르면 하위 폴더가 나타나므로 원하는곳으로이동하기가쉽다. 비스타의‘리딩 창’(reading pane)도 맥 OS에는 없는 독특한 기능이다. 한 마디로문서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띄우지 않고도 MS워드뿐 아니라 엑셀,파워포인트, e-메일을미리보기할수있다. 휴지통 vs 휴지통 휴지통은 윈도 비스타와 맥 OS 둘 다 가지고 있다. 비스타는 휴지통 아이콘이 바탕화면에 자리를 잡지만 맥 OS는 대시보드 안으로들어갔다. 비스타는 휴지통에 버린 파일에 대한 마우스 오른쪽 메뉴는‘복원’‘잘라내기’‘삭제’‘속성’4가지다. 이중에서파일을살려내기위한‘복원’과휴지통에서아예날려버리는‘삭제’두가지를많이쓴다. 맥 OS의 휴지통 메뉴는 비스타보다 많다. 그러나 스크립트 기능이덧붙어서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휴지통과 관련된 것은‘휴지통 비우기’와‘열기’정도다. 휴지통에 있는 파일을 살려내려면 비스타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의‘복원’을 누르지만맥은 그냥 마우스로 끌어 놓는다. 비스타는 원래 위치에 복원되지만 맥 OS는 그 자리로 드래그해야하는게불편하다. |
빌게이츠라는이름에늘따라다니는 ‘세계최고의자선가’는성공한사람이사회적책임을 어떻게져야하는지를보여준다. 탄생 빌 게이츠는 1955년 10월28일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William HenryGates III). 증조할아버지는 주 의원이자 시장을 지냈고 할아버지는 은행 부회장 출신이었다. 아버지 윌리엄 헨리2세는 시애틀에서 이름난 변호사였고, 어머니 메리 게이츠는 워싱턴 주의 영향력 있는 자선모임‘유나이티드 웨이’의회장을맡기도한활동적인여성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빌게이츠보다 생일이 8개월 정도 빠르다. 1955년 2월 24일, 고아로 태어난 그는 폴 잡스 가족에 입양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자동차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 넉넉한살림은아니었지만잡스가원하는것은다들어줄만큼양부모는아들을사랑했다. 천재 스티브 잡스는 자라면서 머리가 비상했고 도전정신도 강했다. 기계 전문가인 아버지 덕분에 기계와도 쉽게 친해졌다. 틈만나면라디오, 냉장고, 심지어자동차를뜯어보면서호기심을채워갔다. 어린나이에장사수완도보통이아니었다. 한번은 스테레오 리시버를 사서 헤드폰 잭을 연결한 뒤 되팔아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양부모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워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장난만 치던 그는 4학년 때 좋은 여교사를만나공부에취미를갖기시작했다. 시애틀명문집안출신의빌게이츠는일찌감치천재적재능을보였다. 7살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나폴레옹 등의 위인전에 파묻혔고 11살에는마태복음 5, 6, 7장을 달달 외웠다.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무엇이든 1등이 아니면 못 견디는 자존심 강한 아이가 되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4~5페이지면 충분한 숙제를 30페이지가 넘는 논문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숙제, 글짓기, 독서 등 그 날 할 일은 딱 부러지게 끝내는 지독한학생이었다. 컴퓨터 빌 게이츠가 컴퓨터를 처음 만난 것은 1967년 시애틀 명문사립인 래이크사이드 학교에 입학해서다. 래이크사이드학부모들은“컴퓨터가앞으로사회에큰영향을미칠것”으로확신하고학교에컴퓨터교육을주문했다. 다행히 학교 근처에는 제너럴일레트릭(GE)이 있었다. 래이크사이드 학교는 GE가 갖고 있는 미니컴퓨터를 시간 당 얼마씩 빌려 쓰는 방식을 택했다. 학교 교실(텔레타이프실)에 단말기를 두고 GE 미니컴퓨터에 전화를 걸어 접속하는 방식이었다. 무엇이든 잘 해야 직성이 풀리는 빌 게이츠의 지독한 승부욕은 컴퓨터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이글거렸다. 빌은 틈만 나면 텔레타이프실로 내달렸고 얼마 지나지않아‘컴퓨터를잘하는학생’으로소문이났다.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와 같은 해 컴퓨터를 운명처럼 만났다. 학교에서 마련한 hp 공장 견학자리에서 컴퓨터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컴퓨터를 갖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웬만한 아이 같으면 포기를 했을 텐데 어린 잡스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hp 창업자인 윌리엄 휴렛에게 전화를 걸어“학교 공부에 필요하다”면서 몇 가지 부품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휴렛은 이 당돌한 꼬마가 마음에 들었다. 흔쾌히 부품을 보내주는 한편, 고등학교 1학년여름내내hp에서아르바이트를하는기회까지선물했다. 운명 컴퓨터를 만난 지 2년 뒤, 부쩍 자란 스티브 잡스는 1969년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여기서 애플컴퓨터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위즈니악(우즈)을 만났다. 당시 나이는스티브잡스가13살, 우즈는18살이었다. 5살의나이차이에도불구하고두사람은금세친해졌다. 우즈는 전자 장치의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도전 자체를 즐기는반면 잡스는 그 장치를어디에 쓸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떠올렸다. 우즈가 과정을 중요하게여기는 과학도라면 잡스는 결과를 취우선으로 하는 사업가였다. 전혀 다른 그들이기에 오히려완벽한팀이될수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우즈를 운명처럼 만났듯이,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거대한공룡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두 번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첫 번째는 폴 앨런이다. 2년 선배인 폴 앨런은 래이크사이드 학교에서 빌 게이츠만큼 컴퓨터광으로 이름을 날렸다.‘ 컴퓨터’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인지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곧 가까워졌다. 1972년, 두 사람은‘트래프-오-데이터’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려 본격적인프로그래머의길을걷기시작했다. 또 한 번의 운명적 만남은 스티브 발머다. 1973년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빌 게이츠는 기숙사에서 우연히 스티브 발머를 만났다. 학교 신문광고부장이면서하버드사교모임의 핵심멤버인 발머는대단한열정가였고 그것이빌게이츠를 매료시켰다. 래이크사이드 학교에서 만난 폴 앨런이 프로그래머로서의 기술적 수준을 높여주었다면 하버드 대학 친구인스티브발머는사업적인감각을길러주었다. 창업 1974년인텔의8080을얹은세계최초의미니컴퓨터‘알테어8800’이 나왔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우연히 이 소식을 접하고 알테어 8800용 프로그램 언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듬해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을 휴학하고 MS를 세웠다. 이후 6년간 MS는 베이직 프로그램 시장을 지배했다. 그런 MS가 운영체제 업체로 거듭난 것은 1980년 들어서다. 당시 IBM은 PC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진행 중이었고 운영체제 개발을 빌 게이츠에게 부탁했다. 빌 게이츠는 새로운 기회임을 직감하고 흔쾌히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이때 빌 게이츠의 권유로 얼마 전 MS에 합류한 스티브 발머가 시애틀컴퓨터라는회사로부터 단돈 5만 달러에 Q-DOS를 사들였다. 그리고 빌은 창문도 없고 환기도 안 되는 방에 틀어박혀 QDOS를기초로 MS-DOS를 만들었다. 결국 IBM PC가 대박이 나면서 MS-DOS까지 횡재를 했고 이후 10년간 2천만달러를벌어들이면서MS를세계최고의기업으로성장시켰다. 애플은 MS보다 2년 늦은 1977년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1974년 말 선보인 알테어 8800에서 비롯되었다. MS의 빌 게이츠가 알테어에서 돌아가는 베이직 프로그램을 짜면서 컴퓨터 분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잡스도알테어8800보다더나은기계를만들기위한도전끝에애플컴퓨터를개발했다. 잡스와 우즈는 잡스의 창고에서 기판을 조립하고 땜질해서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꼬박 60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키보드, 케이스, 메모리, 전원공급기가 없는 인쇄회로 기판에 불과했지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게임을즐기고, 베이직프로그램을돌릴수있었다. 애플I은성공을했고잡스는좀더욕심이낫다. 본격적인사업을시작하기로한것이다. 애플I를개량한애플II는 1977년 4월16일컴퓨터전시회를통해선보여선풍적인인기를모았다. 성공 애플 II의 성공으로 애플컴퓨터는 불과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잡스는 경제 전문지‘포브스’가뽑은‘세계 400대 거물’에 가장 어린 나이로 이름을 올렸다. 대형 컴퓨터가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개인 컴퓨터 광고를 잡지에 처음 실었다는것은애플II가엄청난성공을거뒀다는증거다. 78년과 79년을 거치면서 애플 II용 애플리케이션은 체스, 브릿지 게임과 그래픽 프로그램, 워드프로세서 등 100여 개가 넘었다. 표 계산 프로그램인‘비지캘크’가 나오면서‘애플 II는 사무실에서도쓸 수 있는 컴퓨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판매량은 10% 이상 늘었다. 1983년 펩시콜라의 사장존 스컬리를 스카웃해올 때는“5년 동안 펩시에 있어봤자 아이들에게 콜라를 파는 것 말고는 보람이 없다. 애플로 오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만큼 애플의 성장세는 거침없었다. 애플이 컴퓨터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70년대 말 아직 MS는 IBM에 MS-DOS를 공급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IBM은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시장도 움켜쥐려는 야심에 불타올랐다. 그래서만들기시작한게‘OS/2'다. 빌 게이츠는 IBM과 함께 OS/2를 만들면서도 DOS의 후속작인‘윈도’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언젠가는IBM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OS/2와 윈도의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IBMOS/2의 출시가 늦어지는 틈을 노려 MS는 1985년 윈도 1.0을 선보였다. 윈도 1.0은 그래픽 환경이 지금처럼 친절(?)하지 않았지만 GUI를 시도하면서 거대한‘윈도’역사를 이끌었다. 1987년 11월에는 윈도 2.0이, 1990년 10월에는 윈도 3.0이 잇달아 선보였다. IBM OS/2는 87년 모습을 드러냈지만 윈도의 뜨거운 인기몰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빌 게이츠가 1992년 3월 선보인 윈도 3.1은 윈도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혔고, 마침내 1995년 8월 윈도 95가나오면서MS는‘컴퓨터혁명’을일으켰다. 위기 승승장구하던애플컴퓨터는80년대들어불운의기운에휩싸였다. 애플II의후속작들이기대에미치지못한데다1981년 IBM이 개인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면서 애플의 목을 죄어왔다. 77년부터 82년까지는 애플이 최대 개인 컴퓨터메이커였지만83년부터는 IBM에게정상을빼앗겼다. 1983년 시장 점유율은 애플과 IBM이 각각 21%, 30%였지만 84년 들어 IBM은 35%로 오른 반면 애플은 19%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3년 내놓은‘애플 IIe’와‘리자’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84년에는‘매킨토시’로반격을 노렸지만 거인 IBM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1985년 9월 17일, 이사회는 애플 III와 리자의 실패, 매킨토시의판매부진을이유로스티브잡스를쫓아냈다. 9년 전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한순간 무대 밖으로 떠밀러 나간 잡스와는 달리 빌 게이츠는 인생에서 쓰디 쓴 실패를맛보지않았다. 운이 좋아서일까? 결국은 MS가모든경쟁에서승리를거뒀기때문이다. 최초의 위기는 IBM과 승부였다. IBM PC에 MS-DOS를 납품하던 하청업체가 지금의 공룡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DOS에 만족하지 않고‘윈도’라는 새로운 무기를 제때 선보였기 때문이다. IBM OS/2과 싸움에서는“소비자들이필요한것을필요한시점에내놓는것”이중요하다는것을보여줬다. MS가 윈도 3.1로 운영체제 시장을 석권할 무렵에는‘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빌 게이츠는 인터넷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저가 일으킨 바람이 태풍으로 번질 조짐을보이자 위기감에 휩싸였다. 뒤늦게 익스플로러를 만들었지만 넷스케이프를 꺾지 못했다. 결국 MS는 윈도 95OSR2에익스플로러를끼워넣는극약처방으로역전을일궈냈다. 진화 윈도와 오피스 프로그램 중심의 MS는 2005년을 기점으로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 변화를 시작했다. 2005년 10월30일, 빌 게이츠 회장은 MS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MS를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 변신시키자”고 외쳤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서비스’라는 제목의 e-메일에서 그는“앞으로 인터넷에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이 변화의 물결은 아주 파괴적”이라고 내다봤다. MS는 구글, 야후 등이 성장하는 인터넷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윈도 라이브와 오피스 라이브 서비스를 선보이는 한편 검색 서비스 강화에도 신경을 쓰고있다. MS는 XBOX를 앞세운 하드웨어 시장에서도 선전을 한다. 소니 PS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콘솔 시장인 북미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XBOX 360은 경쟁작인 PS3보다 1년 먼저 나온 데다 기술력도 수준급이어서 2010년 이후 소니와 닌텐도를 누르고 세계 최고의 게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MS는 얼마 전‘준 플레이어’라는 MP3 플레이어로 음악 시장에도 뛰어들었고‘준 폰’으로 모바일 시장을 두드릴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MS가 운영체제 업체에서 인터넷, 나아가 하드웨어 업체로 빠르게진화를하고있는것이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86년 교육용 워크스테이션을 만드는‘넥스트스탭’을세운데 이어 애니메이션 회사인‘픽사’(Pixar)를 인수해 95년 <토이스토리>로 대박을 터트렸다. 승승장구하는 잡스와 달리 애플은 끝없이 추락해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결국 96년 스티브 잡스에게SOS를 보냈다. 치욕을맛본지11년만인96년 말, 잡스는 41살의나이로애플에복귀했다. 잡스복귀이후애플은98년선보인‘아이맥’으로디자인의혁명을일으키는한편출시6주만에무려27만8천대를 파는 기록을 세웠다. 1997년에 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애플은 잡스가 돌아온 지 1년 만에 4억 달러 가까운 흑자를 일궈냈다. 애플은 아이맥의 성공에 힘입어 99년 7월 노트북인‘아이북’을 내놓았고 언론들은“애플 신화가 부활한다”는 기사를 실어 날랐다. 2001년에는 아이팟 MP3 플레이어로 음악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 시장을석권했다. 아이팟은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고, 아이팟과 연계한 온라인 음악 서비스‘아이튠즈’도 시장점유율1위를 내달린다. 얼마전에는‘아이폰’으로휴대폰시장까지넘보는등스티브잡스의도전은끝이없어보인다. 인생 IT 역사를 통틀어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과 실패를 극적으로 맛본 경영인도 드물 것이다. 그가 애플에서 물러날 때만해도 이처럼 화려하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장에서는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렸지만 스티브 잡스는 부활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과 히피 생활, 인도에서 방랑을 거쳐 세계적인 기업의 CEO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드라마보다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다. 기존의 관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좇는 스티브 잡스를 사람들은‘반(反) 문화의영웅’이라고하지만그가걷는길은철저히시장중심적이다. ‘컴퓨터 천재’에서‘비즈니스 승부사’로 거듭난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하면서 비난을 받지만, 그만큼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인물도 드물다. 빌 게이츠가 2000년 1월 부인과 함께 세운‘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다. 지금까지 이곳에 빌 게이츠가 출연한 금액은 250억 달러로 그의총재산 466억 달러(54조5천억 원)의 절반에 이른다(2005년 기준). 그 외에도 빈곤 퇴치와 교육에 수십억 달러씩내놓으면서‘통 큰’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에 늘 따라 다니는‘세계 최고의 자선가’는 성공한사람이사회적책임을어떻게져야하는지를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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