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주식회사 하우리 설립
6월 AVAR(AssociationofAnti-VirusAsiaResearchers) 가입
8월 바이로봇(도스용) 통신망 최초 공개
9월 바이로봇엔진 개발 완료
11월 기술개발 시범 기업 선정(기술신용보증기금)
12월 바이로봇(윈도용) 평가판 공개
바이로봇 95/98 ViRobot 95/98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로봇이란 뜻을 지닌 하우리의 백신 이름이다. 안철수연구소보다 늦게 출발해 초기에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CIH 바이러스 때 신속한 대응과 월등한 실력을 나타내며 기술을 인정받았다.
개발자는 바이로봇의 최고 장점으로 속도와 기술을 꼽는다. 바이러스 샘플이 많아지면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바이로봇은 업데이트 되어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개발되었다. 메모리 이용량이 적고, 리부팅을 하지 않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 창업자 권석철은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제품이다 보니 인터페이스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1998년 바이로봇 윈도 95/98을 시작으로 익스퍼트, 체이지 등을 내놓으며 지금도 계속 후속작들이 나오고 있다.
하우리의 첫 제품인 바이로봇 윈도 95/98. CIH 바이러스때 큰 공을 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1999~2000년
1999년 1월 바이로봇 윈도 95/98 출시
2월 온라인 바이러스 검색 ‘라이브콜’ 서비스 시작(천리안, 채널아이, 넷츠고 등)
8월 에스원, 기보캐피탈, 기보엔젤클럽 등 투자유치로 자본금 증자
아이패스와 업무협력약정 체결/PC방 백신공급에 관한 전략적 제휴 체결
에스원과 바이프리서비스 공동 개발 완료
10월 바이로봇 ‘윈도 NT 서버’ 출시
2000년 1월 유니텔과 해킹방지시스템 도입에 관한 전략적 제휴 체결
2월 시큐어소프트와 바이로봇 API 모듈공급 계약 체결
7월 그룹웨어용 백신 ‘바이로봇 Domino/Notes’ 출시
엔씨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해킹/바이러스 차단솔루션 제공
8월 시큐브와 커널 수준의 바이러스 방역솔루션 개발을 위한 제휴 체결
9월 ‘라이브콜’과 잉카인터넷의 ‘nProtect’의 기술을 더해 해킹차단 솔루션 ‘라이브 프로텍트’ 발표
10월 제1회 ‘인포 시큐리티 하우리 2000’ 개최
라이브콜 Live Call
온라인 백신 ‘라이브콜’은 웹에 접속해서 바이러스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다. 인터넷이나 전용망, 또는 공중망을 이용해 라이브콜 서버에 접속한 뒤 검색을 원하는 폴더나 드라이브를 지정하면 간단하게 치료된다. 국내 하드웨어 업체와 미국 군수업체에 납품되는 등 하우리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최근 라이브콜 스위트 2.0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운영체제의 보안 취약점 분석하고 공유된 폴더 제어 등의 재주를 더했다.
라이브콜은 인터넷의 웹 브라우저를 이용하는 온라인 보안제품이다.
2001~2002년
2001년 4월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 ‘데이터 메딕’
5월 SMTP 게이트웨이용 백신 ‘바이로봇 이메일 프록시’
이메일 서버용 백신 ‘바이로봇 이메일 스캔’
그룹웨어용 백신 ‘바이로봇 익스체인지’
하우리 스페셜 에디션 ‘바이로봇 프로페셔널 플러스’
기업용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 ‘데이터메딕 엔터프라이즈/프리미엄’ 출시
6월 국내 최초 한국형 통합자산관리 솔루션 ‘사이저스’ 출시
8월 한국증권업협회에 코스닥 시장등록을 위한 예비심사청구서 제출
9월 ‘바이로봇 익스퍼트4.0’ 개발
엑셀 문서 전문 복구프로그램 ‘엑셀메딕’ 개발
10월 제2회 ‘Info Security HAURI2001’ 개최
2002년 4월 특허등록 ‘바이러스 피해를 입은 하드디스크 복구방법 및 복구시스템’
실리콘밸리 현지법인 ‘글로벌하우리’ 설립
11월 중국현지법인 CBNS 지분인수로 1대주주로 등록
데이터메딕 DATAMEDIC
데이터메딕은 하우리의 데이터 복구 솔루션이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로 데이터 복구는 물론 바이로봇 엔진을 달아 바이러스 피해로 인해 손실된 데이터까지 살리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하드디스크 복구 방법 관련 특허까지 획득한 제품이다.
이어 개발한 데이터메딕의 온라인 버전 ‘라이브 메딕’은 일반 데이터의 복구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파일,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등에 쓰이는 스마트 메모리 카드, 메모리 스틱 등에 저장된 이미지와 동영상 파일도 복구한다. 라이브메딕은 삭제된 파일 몇 개를 복구하려고 비싼 복구 프로그램을 구매해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고 이용기간에 따라 요금을 매겼다. 또 온라인 프로그램의 활용이 늘어가는 시기에 적절한 제품으로 호응을 얻었다.
하우리는 온오프라인으로 꾸준히 제품을 출시했다. 라이브메딕은 오프라인 복구 제품인 데이터메딕의 온라인 버전이다.
2003~2006년
2003년 6월 ‘바이로봇 익스퍼트’ VB(국제 안티 바이러스 평가기관 바이러스 블러틴이 실시하는 국제 인증 테스트) 100% 인증획득
2004년 2월 보안솔루션업체 바브드와이어와 백신번들 공급과 마케팅 협력계약
글로벌 하우리, MS 바이러스 대응 협력 파트너십 체결
5월 글로벌 하우리, 미연방항공청과 바이로봇 공급계약 체결
2005년 3월 아이오셀과 공동으로 백신내장 휴대형 저장장치 ‘백신드라이브’ 출시
10월 국방부 백신공급 사업자 선정
2006년 5월 바이로봇 ‘데이터 이래이저’ 출시
12월 바이로봇 데스크톱 5.5/VISMS3.5/어드밴스드 서버 3.5 신제품 3종 출시
하우리 쇼핑몰 오픈
바이로봇 3.5 ViRobot 3.5
패키지 디자인의 변화가 눈에 띄는 버전이다. 그동안 바이로봇이라는 브랜드 이름에 맞춰 PC 부품이나 로봇 등 딱딱한 이미지로 디자인하다가 ‘PC의 비타민을 공급하자’란 콘셉트로 과일과 채소를 넣어 만들었다.
바이로봇은 3.5 버전은 인터넷이나 이메일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는 컴퓨터 바이러스나 웜, 악성 프로그램과 스팸메일, 스파이웨어 등으로부터 개인 이용자를 보호하려고 개발한 제품이다. 이후 2년여 동안 제품 발표가 없어 오랫동안 하우리의 대표 제품이었다.
바이로봇의 이름과 어울리는 딱딱한 디자인에서 PC에게 비타민을 공급한다는 콘셉트로 바뀐 제품.
2007~2008년
2007년 1월 바이로봇 데스크톱 5.0 스탠다드 안티 바이러스 레벨2 인증획득
바이로봇 데이터이래이저 GS 인증 획득
6월 네오위즈 게임보안 솔루션 납품
9월 큐릭스 컴닥터(고객용 PC 보안) 서비스 공급
10월 국가기록원 기록관리시스템 사업 참여
하우리 바이러스 연구소(www.virscan.org) 등록
2008년 1월 바이로봇 데스크톱 5.5 윈도 비스타 인증 획득
바이로봇 데스크톱 5.5 CC인증 획득
라이브콜 Suite 2.0 GS(Good Software)인증 획득
실시간 감시기 기술 특허 획득
2월 바이로봇 데이터이래이저 2.0 보안적합성 검증 획득
바이로봇 데스크톱 5.5 체크마크 획득
3월 하우리-NHN, 백신엔진 공급계약 체결
9월 바이로봇 패밀리팩 출시
11월 SK브로드밴드, PC보안 ‘브로드앤클린’ 백신 제공
바이로봇 ‘메일 시큐리티’ 출시
데이터 이래이저 Data Eraser
2006년 5월에 나온 데이터 영구 삭제 프로그램이다. 휴지통을 이용해 파일을 지우거나 포맷하면 데이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보만 지울 뿐, 실제 데이터는 삭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데이터가 유출되어 생기는 피해를 예방하는 제품이다.
2008년 2.0으로 업데이트한 ‘데이터 이래이저’는 미 국방성 표준안에 따른 삭제 알고리즘으로 파일을 지운다. 절대 복원할 수 없으며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도록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한다. 데이터 보안을 위해 파일이나 폴더를 완전히 삭제해야 할 때나 시스템 매각 등으로 하드디스크 자료를 초기화할 때 이용한다. 6단계 보안 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데이터 이래이저는 데이터 영구삭제 프로그램으로 기밀 문서의 외부 유출을 완전히 차단한다.
2009년
3월 바이로봇 윈도 서버 3.5 CC(국제공통평가기준) 인증 변경 승인 획득
바이로봇 데스크톱 5.5 CC 인증 변경 승인 획득
하우리 창립 11주년
바이로봇 교통비 절감 이벤트 개최
4월 6년 연속 체크마크 획득
하우리의 현재
하우리는 3년 연속 흑자 경영을 기록하며 백신제품 기술개발과 고객서비스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늘어난 인원 중에 절반 이상이 연구원과 서비스센터 직원이다. 김희천 대표는 올해 매출 목표를 100억 원으로 잡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
올해 3월 11살 생일을 맞은 하우리는 혹독한 사춘기를 이겨냈다. ‘바이로봇’ 백신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 인기를 맛보더니, 코스닥 상장폐지와 창업자 구속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기술과 경영은 다른 문제’라는 교훈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하우리는 프로그램 개발회사에서 서비스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2006년부터 하우리를 이끌고 있는 김희천 대표
하우리의 창업 구성원은 대표이사였던 권석철을 포함한 개발자 4명과 회계 담당 1명이었다. 한 명은 현재 잉카 인터넷 대표인 주영흠이고 나머지 3명은 터보테크라는 백신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어 창업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CIH 잡고 기술력 인정 받아
회계 담당자를 뺀 창업자 4명은 모두 1996년 7월 PC통신 천리안 ‘바이러스 치료 동호회’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동호회에서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백신프로그램도 짜면서 실력을 익히고 상대방의 능력도 파악했다. 이중 백신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권석철은 좋은 백신을 개발해보고 싶은 마음과, 혼자서 외산 백신에 맞서 싸우던 안철수연구소에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에 나머지 3명을 설득했다. 다들 거주지가 멀리 떨어져 마음을 먹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회사 설립의 뜻을 모은 뒤에는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1998년 3월 하우리를 설립했다.
하우리는 ‘하늘 아래 우리가 있다’라는 뜻이다. 예쁜 이름이긴 하나 백신 회사를 잘 나타내지 못한다하여 ‘이게 뭐야’라는 반문이 많았다. 나눔기술, 도움기술, 방패시스템 등 다른 후보들과 경쟁했지만 권석철은 지금 만드는 회사가 백신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분야를 서비스하는 하나의 그룹으로 운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종합적인 의미를 담은 하우리로 결정했다. 대신 백신 브랜드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로봇이란 뜻을 지닌 ‘바이로봇’으로 정직하게 만들었다. 이름 짓는 것만큼 제품 출시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개발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제품에 쉽사리 만족하질 못했다. 더구나 디자이너가 없어 마음에 드는 인터페이스도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제품의 출시가 미뤄지자 권석철은 인터페이스는 아쉽지만 엔진이 완성되었으니 기술력을 믿고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잡느냐 못 잡느냐의 문제”라며 기술력에 자신감을 내보이며 1999년 1월 시장에 내보냈다.
당시 국내기술은 안철수연구소 하나뿐이었지만 카스퍼스키나 시만텍, 맥아피 등 외산 백신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 바이로봇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제품을 알리기 위해 값을 낮추고 여러 업체를 찾아 다녔고 다행히 피자헛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하우리의 시험무대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그 해 4월 국내에 CIH 바이러스가 터진 것이다. 윈도 95나 98을 이용하는 PC를 공격하는 CIH 바이러스는 하드디스크의 모든 자료를 파괴하고 기본 입출력 시스템을 망가뜨려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성 바이러스다. 당시 정부와 기업, 개인 컴퓨터 100만 대 이상을 공격해 약 3,0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 국내 기업의 전산망을 흔들었던 이 바이러스의 공격에 바이로봇을 쓴 피자헛만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우리의 기술력이 자연스럽게 입증된 셈이다.
권석철은 CIH 바이러스가 터졌을 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은 둘째치고 미리 제품을 내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IH 바이러스 사건 이후 하우리는 ‘돈도 안 되는 이런 제품을 뭐하러 내놓았냐’는 질문을 서슴치 않던 기자와 업체 담당자들이 조언을 구하러 제집 드나들듯이 해 프레스센터처럼 되어버렸다.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갑자기 인기스타가 된 것이다. 하우리가 대방역 근처에 있었는데 방송국이 몰려있는 여의도와 가까웠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가 더 많았다는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게임 산업으로 진출하려고 하이윈과 계약을 맺었다.
코스닥 재수생 하우리
2001부터 2003년은 하우리 최고의 전성기였다. ‘익스퍼트’ ‘이메일 스캔’ ‘익스체인지’ 등 바이로봇의 신제품들이 대거 등장했고 해외 법인도 많이 만들었다. 2001년 9월 미국에서 건너온 ‘님다 바이러스’나 2003년 1월에 일어난 ‘인터넷 대란’에서도 큰 활약을 보였다. 30년 동안 발행해온 일간지의 편집 시스템을 고쳐 제대로 발행하게 도왔고, 시스템 다운으로 하루 100억 원씩 손해 본다는 대기업의 시스템도 고쳐주었다. 바이로봇의 인지도는 점점 올라가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상승했고,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국내 시장을 양분하는 백신 업체가 되었다.
하우리는 운도 좋은 편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붐이 일어나 정부 지원도 많이 받았다. 처음부터 세계 진출에 꿈이 있었던 권석철은 코스닥 진출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많은 외국기업들의 인수제의도 많았지만 브랜드를 살리려고 모두 거절했다. 사활을 건 코스닥 도전은 한 차례 실패했지만 이듬해 다시 도전해 2002년 1월 자본금 75억 원으로 코스닥에 입성한다. 안타깝게도 하우리의 매출은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권석철은 수익을 내기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2004년 한 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개인 이용자가 많은 게임 산업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온라인 게임 대작들이 늘어나면서 아이템 도난, 게임 데이터 조작, 개인정보 유출 등 다양한 형태의 해킹 사고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에 게임업체 하이윈과 계약을 체결했다. 게임 사업에 이어 하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2004년 말 청주에 있는 드림플러스 영화관을 130억 원에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코스닥 등록 직전 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상장 직후 계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무리한 해외법인 확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2002년 7억 원이던 손실은 2003년 28억 원, 2004년엔 90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계장부에 조작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코스닥 등록 4년 만에 상장 폐지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2005년 4월 드림플러스 인수를 무효화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코스닥 상장 폐지 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국 하우리는 코스닥의 상장 폐지와 대표의 불명예 퇴임이라는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0년 대 초반에 나온 바이로봇의 많은 제품들.
2인자의 삶을 즐기다 퇴장하다
2005년 3월 자금횡령, 경영미숙 등의 이유로 창업자인 권석철은 안타깝게 하우리를 떠났다. 하우리는 제품에서 늘 안철수연구소의 뒤를 쫓더니 대표의 퇴진시기까지도 비슷해 끝까지 비교대상이 되었다. 안철수는 박수칠 때 떠난 반면 권석철은 얼룩진 명예를 떠안은 극과 극의 상황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당시 국내 백신업체가 안철수연구소밖에 없었던 터라 하우리는 원치 않더라도 늘 안철수연구소와 경쟁구도가 이루어졌다. 그들의 주장대로 기술력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몰라도 인지도면에서 안철수연구소가 한발 앞섰다. 때문에 2인자의 꼬리표가 따라 다녔지만 권석철은 오히려 이걸 즐겼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보이는 틈을 자신은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즐거운 2인자 생활”이었다고 추억한다.
안타깝게 그는 프로그래머로서는 뛰어날지 몰라도 (본인도 인정하는 것처럼) 경영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다. 하우리에서 나와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니 권석철은 “창업을 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돈이 아니다, 서로 다른 엔지니어 스타일을 통합하는 것”이라며 “더 만들어야 한다, 빨리 팔아야 한다 등 의견 대립이 많아서 많이 싸웠다”고 회상했다.
코스닥 상장 폐지로 한 때 8천 원 가까이 했던 하우리의 주식은 900원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회사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는데 모두 전문가가 아니어서 난항을 겪다가 2005년 10월 국방부 프로젝트를 따내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6년에는 하우리의 적극적인 행보에 시큐어소프트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큐어소프트는 하우리를 46억 원에 인수했고, 시큐어소프트에 부사장으로 있던 김희천 현 대표가 12월에 하우리를 인수했다. 그는 “당시 외부의 영향으로 어려워졌을 뿐이지, 그때도 하우리의 기술력은 탄탄했다며 경영만 투명하게 하면 되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라고 판단했다”며 인수이유를 밝혔다.
하우리 5.5는 이전 버전 이후 2년 만에 나온 제품이다. 새로운 제품 개발에 뜻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신제품으로 모든 우려를 씻어낼 계획
김희천 대표는 지난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인수 후 한 달에 한번씩 모든 직원에게 매출을 포함한 주요 경영 지표를 공개하는 등 투명 경영에 힘썼다. 그 결과 5년 동안 이어오던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43억 원 매출에 순이익 11억 원을 달성했다. 코스닥에서 퇴출된 지 불과 1년 만에 거둔 이 같은 성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덕이다. 한때 120명에 달했던 회사 인력을 거의 절반으로 줄이고 무려 7개 국에 설립했던 해외 현지법인들도 미국과 독일만 남기고 모두 철수시켰다.
이 과정에 회사의 흐름이 바뀌기도 했다. 기술개발 회사에서 서비스 중심의 회사로 바뀌었고 다른 경영방식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은 스스로 나가기도 했다.
2006년 4월에는 미국 방위산업체에 28억 원 규모의 ‘바이로봇 USB’를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제품코드를 넣는 방법으로 불법 이용자를 근절했다. 이후 네이버 PC그린과 무료 백신 계약을 맺었다. 탄탄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이익이 나는 사업에 힘을 쓴 덕이었다.
2009년까지 이익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기술 투자가 줄었다는 지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매년 해오던 하우리의 기술발표회 ‘인포 시큐리티 하우리’도 사라졌다. 가장 최신 버전인 바이로봇 5.5는 거의 2년 만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조금씩 고객사에서 새로운 버전에 대한 압력을 불어넣고, 느슨해진 제품개발에 핵심 연구원 몇몇이 떠난 뒤에야 김희천 대표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이 회사에는 연구원밖에 없냐고 불평할 정도로 새로운 제품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과감하게 대기업의 연구팀을 통째로 영입해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내년 상반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김희천 대표는 새 제품에 대한 비밀이 새나가면 안된다며 말을 극도로 아꼈지만 ‘하우리 노하우가 담긴 독창적인 신기술’이라는 점은 거듭 강조했다. 기술을 등한시 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처사라는 시선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김희천 대표는 여전히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쓰면 제품가격이 올라가 이용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경쟁제품 출시를 피해 내년 상반기쯤 발표할 예정이다.
코스닥 재상장은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김희천 대표는 코스닥 상장을 서두르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파트너사나 주주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하우리는 매년 기술 발표회를 열고 자사의 신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렸었다.
기자의 말
하우리는 처음부터 기술력으로 인정받은 회사였다. 창업자의 경영실수로 코스닥 상장폐지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한 때 국내 백신업계를 양분했던 바이로봇의 신뢰도는 높은 편이다. 코스닥 상장폐지 이후 바닥난 자금을 메우려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무료 보건소가 아닌 돈 받는 병원으로 바뀌어 갔다.
최근 매출이 점점 올라가고 회사는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하우리의 이름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 나와야 할 때다. 내년 상반기에 준비하고 있는 제품이 기대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우리가 완전히 재기에 성공했는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