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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포스트] SK 최태원과 노태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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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포스트] SK 최태원과 노태우 '그림자'
  • 박봉균
  • 승인 2024.08.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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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戰 노소영 ‘1승’… 쟁점은 대법원으로
SK 성장은 양심기업 찾던 박정희와 더 깊은 인연
최태원 회장 재산 형성시기, 노소영과 결혼이후 쟁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재판 현안 등을 주제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재판 현안 등을 주제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smartPC사랑=박봉균 기자]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곳 찾기 힘들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막연한 소설같은 기사들이 판친 게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 뒤에 난무한 뒷담화다. 일단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위자료 부분만큼은 노 관장의 ‘판정승’으로 기울었다. 

남은 쟁점은 SK그룹이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금전적·무형적 지원으로 성장했다는 노 관장의 주장이다. 재산분할과 관련해 노 관장의 SK에 대한 기여도가 적정한 지에대한 가름이 이 지점이다. 물론 ‘금전적’ 대목에는 대통령 비자금이 또 꼬리를 문다. 그래서인지 “사돈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며 SK를 깎아 내리는 각종 설화(說話)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최 회장의 소송과 무관치 않다. ‘타성’과 ‘현실’에 목매인 미디어들이 그동안 비껴댔던 재벌문제를 혼탁하게 취급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SK 성장의 인연은 박정희와 더 깊다. 7년전 고인이 된 자민련 김용환 수석부총재에게 전해들은 일화 한토막. “50년대 당시 박정희는 자생력으로 성장한 양심적인 기업을 찾았습니다. 기업들의 부정축재를 뿌리 뽑겠다고 작심한 때였습니다. 한일회담 막후교섭 직후 뒷풀이에 참석했던 김종필이 박정희 의중을 알고 전달한 내용이 ‘수원에 한 기업이 있는데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공장을 세워 특혜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취지의 당시 선경직물에 대한 얘기였다 합니다.”

박정희와 김종필의 이 대화는 선경의 운명을 바꿨다. 실제 박정희는 1961년 9월 수원의 중소기업 선경직물을 전격적으로 방문한다. 박정희와 인연이 닿은 SK 창업주 최종건은 1970년대 말까지 성장가도를 달렸다. 선경개발, 선경유화, 선경석유, 선경금속, 선경매그네틱 등이 모두 이 무렵 세워졌다. 1973년 워커힐 인수후 최종건은 폐암으로 타계했고, 후계자인 동생 최종현 시대가 열린다. 최태원 회장의 부친이다.

이후 SK그룹이 승자로 남은 초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가 SK텔레콤 설립이었다. 노태우의 무형적 지원의 핵심이라는 주장의 대상이 이 곳이다. 1992년 노태우 임기 마지막 해에 사돈그룹인 선경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하며 수혜를 입어 출범한 게 SK텔레콤이란 루머의 근원이다. 당시만해도 이동통신사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거대한 이권사업이었다. 재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메가톤급 이슈였다. 실제 재계에서는 “노 대통령이 선경을 밀어 퇴임후를 보장 받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과정에도 사실과 틀린 반전이 있다.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YS(김영삼)의 반발이다. 권력의 중심이 YS로 넘어왔고, SK는 노태우 시절 따냈던 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게 된다. YS는 대통령 취임 직후 재계로부터 단 한푼도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깜짝 선언’을 했다. 노태우의 사돈인 최종건 회장은 YS 초기 청와대의 재계인사 초청대상에서 빠지는 등 ‘왕따’를 당할 정도였다.

루머와 달리 SK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한 것은 1994년이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포철, 코오롱 등과 치열한 눈치 경합을 벌여야 했다. 당시 YS가 선정 특혜를 차단하기 위해 짜낸 묘수가 기업자율에 맡긴 것이다. SK의 이동통신 진출은 노태우 정권 시절이 아닌 YS때 인 것으로 정리된다. 혹여 노태우보다는 YS에 마음의 빚이 남았을지 모를 일이다. 

여전히 쟁점으로 남은 대통령 비자금 등 SK그룹이 성장한 뒷 배애 ‘노태우’라는 고리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데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다만 그 고리에 노소영이 있었다는 사실의 진위여부는 진행형이다. 

대법원에서 다룰 법리 다툼은 노태우의 비자금이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전달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의 메모와 약속어음을 근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 또 최 회장이 이미 친족들에게 증여한 SK 지분까지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로 압축된다. 

대통령 비자금이 실체가 없고, 약 4조원대의 최 회장 재산은 본인이 이룬 성과라는 점이 인정되면 노 관장의 소송전은 이혼 위자료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반대의 시나리오면 복잡해진다. 

비자금 메모와 어음이 증거로 채택되고, 최 회장의 재산 대부분이 결혼 이후 형성된 공동 재산으로 인정되면 SK그룹의 지배구조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재산형성 중에 최 회장이 SK(주)의 전신인 대한텔레콤 주식을 2억 8000만원에 취득한 시점은 1998년이었고, 최태원-노소영의 결혼이 1988년이었다. 당연히 최 회장의 재산 형성시기를 결혼 이후로 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또 다른 쟁점이 있다. SK그룹이 과거 정유(유공, 전신은 대한석유공사)와 이동통신을 핵심으로 성장했는데, 이 두 분야를 노소영의 내조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는 업계의 시각이다. 정점에 노태우라는 연결 고리가 있었다는 관측이고, 노 관장이 자기 몫을 주장하는 근거다. 민법에 따르면 최 회장은 불리하다. 법조에선 이 사건의 전합 회부 여부를 두고도 관심이 뜨겁다. 법리상 다툴 점도 많고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합 판단을 받는다면 이혼 재산분할 사건으로는 첫 전합 판결이 된다.

개인사의 고리를 끊으려 하다 촉발된 점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어떠하든 SK그룹 수장인 최 회장의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미덕을 볼 수 있기를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이혼은 지극히 개인사이지만, 글로벌 기업 SK는 대의적으로 공적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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