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포츠의 장, 현실은 좌충우돌 e스포츠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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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포츠의 장, 현실은 좌충우돌 e스포츠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 PC사랑
  • 승인 2013.05.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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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사의 게임 ‘스타크래프트 2’의 전 세계 토너먼트 대회 ‘스타크래프트 2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에 PC방 광풍을 비롯해 온 국민이 게이머가 되도록 한 명작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그 후속작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프로게이머들의 활발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새로운 스포츠의 세계 ‘e스포츠’. 그러나 그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환용 기자
 
 

 

 

 

 

 

 

 

 

e스포츠의 시작은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전 프로게이머 마재윤의 불미스러운 승부조작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1의 맥이 끊기고, 게임의 다양성이 줄어들며 그 입지가 상당 부분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PC 게임 뿐만 아니라 XBOX360, PS3 등 콘솔 게임의 수요가 꾸준하고 새로운 게임들과 더불어 다양한 국제 대회들이 꾸준히 개최되는 등 게이머들에게 그 열기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일련의 불명예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진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두 손과 함께 쉴 새 없이 전장을 체크하고 전략을 짜야 하는 두뇌 회전을 요구하는 것이 게임이다. RTS, 레이싱, FPS 등 장르를 불문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는 프로게이머들은, 아직도 기성세대들의 게임에 대한 틀에 박힌 인식 때문에 힘이 든다. 시장이 크게 성장하며 코치, 감독, 협회 등 다양한 직종이 파생되며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e스포츠.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바탕으로 가늠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 보자.
 
 
 
발단 -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밍 세계를 열다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1 리그의 우승자 허영무(프로토스, 삼성 칸).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5경기는 글로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감히 그 경기는 두 선수 모두를 승자라고 부르고 싶다.
 
 
기자가 기억하는 첫 게임대회는 프로 대회가 아닌 ‘동네 PC방 대회’였다. 물론 PC게임 이전에도 TCG(ex : 매직 더 개더링) 등의 보드게임 대회가 있었지만, 스타 1이 발매되고 전국에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상가건물 한 채에 PC방이 두세 곳씩 들어서며 지역별로 게임대회를 개최하는곳이 많았다. 대회라고 해도 현재의 리그처럼 거창하지 않았고, 한 지역 (기자는 고등학생 시절 경기도 안양에 살았다)의 PC방이 연합해 토너먼트 방식의 대회를 치르고 순위에 따라 상금이나 PC방 이용권 등의 상품을 주는 작은 대회였다. 나름대로 상당한 연습을 통해 얻을 실력을 자랑하고자 친구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했던 기자는, 3vs3 팀 매치였던 PC방 대회의 첫 경기에서 상대 팀에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초반에 상대의 9드론 러시에 시달렸던 탓인지 생각처럼 풀리지 않던 경기는, 소수의 다크 템플러와 커세어로 상대 팀의 저그 본진을 뚫어냈지만, 혼자 남은 기자와 달리 세 명 모두 살아있던 상대방의 공세를 막을 순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 출전이었던 그 날이 아직 생생하다. 90년대 중·후반에는 ‘프로게이머’라는 단어가 없었다. 해외에서 게임대회 상금이 주 수입원이었던 소수의 게이머들이 있었지만, 대회나 리그 자체가 공신력이 있기보다는 게임회사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개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게임을 전문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99년 당시 스타 1을 비롯해 유행했던 퀘이크 3, 레인보우 식스 등 많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부모님의 등짝 어택을 당하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많은 스타 1 게이머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곳은 블리자드의 무료 게임 채널 ‘배틀넷’이었다. 네 개의 지역 서버로 나뉘어져 있는 곳에서 게이머들은 포인트 제도가 도입된 래더 채널에서의 경기를 통해 점수를 쌓아 나갔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래더 포인트에 따라 실력을 가늠하고 자체 경기를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스타 1이 출시된 뒤 래더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었던 게이머 김태형(본명 김도형)은 이듬해 열린 게임 방송에서 해설을 맡아 현재까지 최고의 해설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9년 3월, 최초의 게임 방송이 케이블 만화 채널 투니버스에서 시작됐다. 게임 방송을 제안한 투니버스의 황병준 PD는 전국적인 열풍이었던 스타 1의 게임 대회를 제안했고,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내외적인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환경 속에서 당시 인기 만화 ‘까꿍’의 스토리 작가였던 엄재경이 해설로 영입됐다. 그와 함께 앞서 언급한 김태형과 더불어 최초의 게임 캐스터 김철민까지, 3인 해설 체제를 갖춘 본격적인 게임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첫 방송 대회의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다. 투니버스의 모회사 온미디어는 ‘게임방송’ 콘텐츠 자체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나타냈고, 방송 편성과 중계 외에 변변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계진 유니폼은 고사하고 ‘옵저버’의 개념도 명확하게 잡혀 있지 않아 중계 화면이 매끄럽지 못했다. 지금 보면 안타까울 정도로 우스웠던 출전 선수들의 복장 또한 게임방송 초창기의 신선함(?)을 느끼게 해 줬다. 최초의 한국인 프로게이머였던 신주영을 비롯해 점차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프로게이머’들의 활약은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에 투니버스에서 독립한 전문 게임 채널 온게임넷(스타리그)과 MBC의 케이블 게임 방송 MBC게임(MSL)의 출범으로 스타 1과 프로게이머들은 본격적으로 전문성을 띠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2004년까지는 인천방송(iTV,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개최했던 ‘iTV 랭킹전’까지 리그삼파전을 벌였지만, 2004년 말일 경인방송의 폐업으로 게임 대회는 양강체제로 굳어졌다. 신주영이 최초, 이기석과 최진우 등이 1세대 프로게이머라면,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큰 활약을 보여 수많은 팬을 보유하게 된 임요환, 홍진호, 강민, 최연성 등이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황제’, ‘폭풍’, ‘몽상가’, 심지어 ‘괴물’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으며 가히 한 세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게이머를 내려놓은 뒤 프로게임팀 감독, 해설자, 코치등으로 활동하며 게임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 때 ‘게임 폐인’으로 폄하되던 게이머들이 직업의식을 가지고 선수 타이틀과 함께 방송에 진출하며 프로게이머의 입지는 더욱 탄탄하게 다져졌다. 실력과 쇼맨십을 겸비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속속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방송 경기의 인기가 급상승하며 기업들의 스폰서도 이어졌다. 게임방송의 후발주자였던 MBC게임은 MSL 운영 난조로 제대로 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파일 공유 사이트가 나서는 등의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온게임넷은 2010년 대한항공 스폰서로 리그를 개최하며 결승전을 항공기 격납고에서 펼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0년 대한항공 스타리그 결승전은 항공기 격납고에서 두 대의 항공기를 사이에 두고 펼쳐졌다. 당시 항간에 ‘항공기 조종석에서 경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 정도였다.
 
 
 
전개 - 게임이 스포츠가 되기까지
 

2012년 GSL 결승전을 찾은 관객들로 가득 찬 관중석. e스포츠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발전’이 아니라 ‘변화’를 뜻한다. 좋아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 이 말을 기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이 뒤바뀌는 시간은 10년보다 더빨라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불모지에 가까웠던 게임 시장이 블리자드의 게임 타이틀 하나로 지각변동 수준의 변화가 이뤄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1998년 오리지널과 확장팩의 출시 이후 약 2년 만에 전국 2만여 PC방의 신설과 함께 전 국민을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만든 점은 높이 사고싶다. 게임은 외국산이지만 이를 이용한 산업화와 스포츠화는 한국인의 힘이컸다. 소위 ‘젓가락 신공’으로 불리는, 압도적으로 빠르고 민첩한 손놀림을 자랑하는 한국인 게이머들은, 배틀넷의 아시아 서버를 넘어 미주와 유럽의 서버까지 장악하며 세계적으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떨쳤다. 지난해 출시된 자사의 ‘디아블로 3’가 배틀넷 오픈 6시간 만에 한국에서 노멀모드가 정복된 ‘사건’도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스피드를 동반한 ‘게이머 기질’이 발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2000년대 중반까지 워크래프트 3, 카트라이더, 스페셜 포스, 철권 등 다양한 종목에서 프로게임 리그가 펼쳐졌다. 전략 시뮬레이션에서는 멀티태스킹, FPS에서는 빠른 동체시력과 반응속도, 레이싱 게임은 코스 암기와 드리프트 타이밍 등, 게임마다 필요로 하는 게임 센스가 모두 달라 보는 사람들도 그 다양함에 빠져들었다. 특히 카트라이더 리그는 SK콜렉트콜이 스폰서로 나선 온게임넷 카트라이더 5차 리그에서 당시 10살인 문호준이 우승을 차지하고, 현재까지 통산 7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소황제’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이처럼 개인이 집에서 즐기던 게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협업이었다. 대부분의 게임에는 레벨업이나 아이템 등의 기간적인 노력과 더불어 상황 판단, 빠른 손놀림 등의 게임 센스가 필요하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게이머들 간에 ‘경쟁 구도’가 생기게 마련이고, 한국인 특유의 불타는 경쟁심과 ‘1등 지상주의’는 모든 게이머들의 평균 실력이 타국의 게이머들보다 한참 위에 서도록 만들었다. 가장 큰 게임 리그인 스타크래프트를 봐도, 1과 2를 통틀어 세계인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한국인이 1위를 놓친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 경쟁 구도는 마침내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하나의 대회에서 격돌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기자의 기억으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9-2010 시즌’은 총 12개의 프로게임단이 5라운드 단일 리그로 팀당 55경기를 치렀고, 7전 4선승제의 경기 방식으로 2009년10월부터 장장 10개월간 펼쳐졌다. 비록 기자가 선호했던 2vs2 팀 매치는 08-09 시즌부터 볼 수 없었지만, 당시 올드 게이머였던 임요환이 1년여 만에 승리를 거두고,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펼쳐진 결승전에서 ‘최종병기’ 이영호(테란, KT 롤스터)가 최종전에서 승리해 입지를 굳게 다지는 등, 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쏟는 땀과 노력,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팬들까지 e스포츠의 입지는 계속해서 높아져 갔다. 경기장을 찾는 수천, 수만 명의 관객들이 선수들의 파인 플레이에 환호하고, 게임단의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전략 수립에 여념이 없다.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옵저버, 심판, 스태프 등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세 명의 중계진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로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현대적인 스포츠가 되기에 일말의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위기 - 승부 조작, 그리고 리그 폐쇄
 
 
승부 조작에 가담해 자격을 박탈당한 전 프로게이머 원종서(좌)와 마재윤. 마재윤은 현재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에서 BJ로 활동 중이다.
 
 
여느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e스포츠에서도 잡음은 발생했다. 리그 초기에 경기 방식과 룰에 대한 이견은 시간이 지나며 체계화를 통해 자리를 잡았고, 꾸준히 이어진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내 세 종족의 밸런스도 ‘완벽’에 가까워졌다. 프로게이머 또한 길지 않은 수명 덕에 빠른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때로는 저그의 뮤탈리스크 무빙 어택, 때로는 드랍십의 2cm 드랍 등 갖가지 새로운 전략이 속속 쏟아져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줬다.점점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 가던 이 판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것은 지난 2010년 5월이었다. 그 이전부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프로게이머들이 불법 도박사이트와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스타리그의 승부에 돈을 거는 도박 사이트가 횡행했으며, 도박 사이트 관계자들은 프로게임단에 접근해 경기 엔트리공개, 고의 패배, 선수 리플레이 파일 유출 등을 요구했다. 이 중 당시 현직 프로게이머였던 원종서와 마재윤는 여러 명의 후배 및 동료 프로게이머들에게 돈을 건네며 승부 조작에 가담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응한 몇 명의 게이머들이 고의로 경기를 패배해 베팅한 돈의 차익을 챙겼다. 이에 e스포츠 관계자들은 자체 조사에 착수해 도박 사이트 브로커와 중개자, 가담자 11명을 색출했다. 이 중 단순 가담에 그쳤던 7명의 프로게이머들은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됐고, 브로커 박훈서와 자영업자 이상길, 은행원 박명열, 축구선수 정명호, 전직 프로게이머 정진현과 최가람까지 8명은 최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에서 최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까지 최종 선고를 받게 됐다. 이 조작 사건에 연루된 모든 전·현직 프로게이머들은 모든 기록이 삭제되고 영구 제명되는 불명예까지 안아야 했다. 해설자 김태형은 이 사건에 대해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울분을 표하기도했고,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모두를 기만한 그들의 행위에 수많은 팬들이 떨어져 나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조작의 여파는 당사자들의 처벌로 그치지 않았다. 스포츠의 조작에 대한특수성은 많은 팬들로 하여금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로 인해 점차 팬들이 줄고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줄어들며 200여 명에 달하던 대회 참가자들이 절반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출시 이후 10년이 넘었지만 20세기 최고의 게임으로 불리며 e스포츠를 주도했던 스타크래프트는, 2010년 출시된 후속작에 그 명성을 제대로 넘겨주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에 의해 천천히 무릎을 꿇어 갔다. 결국 2012년 2월 게임 채널의 양대 산맥이었던 MBC게임 방송국이 폐지됐고, 뒤이어 8월 4일 허영무와 정명훈(테란, SKT T1)의 TVing 스타리그2012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스타크래프트 1의 공식 리그는 끝을 맺게 됐다. 마지막 리그라는 것이 작용했을까? 준결승전에서 김명운(저그, 웅진스타즈)을 만난 허영무는 마치 역대 모든 프로토스 프로게이머들의 신기(神技)를 한 데 모은 듯한 명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스타리그의 우승자이자 마지막 프로토스 우승자가 된 허영무의 환호는 기쁘면서도 슬퍼 보였다. 온게임넷의 스타리그는 이 경기 이후부터 후속작 ‘스타크래프트 2 : 자유의 날개’를 공식 종목으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엄연히 후속작일 뿐 확연히 다른 환경과 전략 등으로 스타 1 프로게이머들이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SK플래닛 프로리그에는 8개 프로게임단이 열전을 펼치고 있는데, 스타 2 팬들 사이에서는 프로리그보다는 개인리그인 곰TV 주최의 GSL의 경기 수준이 더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직접 주최해 온 곰TV 리그 ‘GSL’과 ‘GSTL’(팀리그), 온게임넷 스타리그(WCS 출범부터 주최), 그리고 이 두 방송사 리그를 공동 운영하는 체제인 ‘WCS’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정식 대회 시스템의 체계 역시 아직은 불완전한 상태다. 게다가 스타 2의 배틀넷 랭킹 시스템이 랭킹과 계급 등 전작보다 복잡해졌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팬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는 대회 자체의 운영이 아니라 팬들과 만나는 매개체에 대한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온게임넷은 여전히 케이블 TV 채널이지만 곰TV GSL은 인터넷 방송이다. 블리자드는 WCS 출범을 발표하며 전 경기 생중계 및 VOD를 인터넷 방송국 ‘트위치’를 통해 볼 수 있지만, 트위치는 중간 연결통로 수단에 불과하다. 결국 대회의 정체성이나 주체를 해당 콘텐츠의 생산자로 봐야 하는데, 과거 스타 1 시절부터 이어져 온 KeSPA의 행보를 보면 블리자드가 직접 주최하기로 결정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해 8월 GSL 불참 선언까지 했던 KeSPA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협회에 불과한 단체에서 파이를 잃지 않기 위해 소속 선수들의 불이익을 외면하는 행위는 엄연한 자격미달이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특히 KeSPA는 국내 프로게이머들과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좀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절정은 아직, 두 번째 날개 펼쳐질까?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4월 11일 KeSPA는 2014년에 개최되는 인천 아시안게임의 프레대회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운영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의 총칭’이 스포츠의 사전적 정의인데, 바둑이나 체스 등이 멘탈 스포츠로서 정식 종목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e스포츠 역시 수많은 현대인들이 즐기고 있는 유희로서 스포츠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국내에서의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1980년대 수준에 멈춰 있는 것은 아쉽다.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게임’ 하면 ‘공부 안 하고’ 식의 동문서답을 내뱉기 일쑤이다. 기자 역시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게임을 놓지 않았고, 결국 어른들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의 눈을 피하는 비겁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들의 유년 시절의 고생에 대한 반작용성 보상이라도 바라는 듯이 공부만을 강요하기에 바쁜 그들은, 결국 어린이 시절부터 창의력과 상상력을 틀어막은 채 자신들의 틀에 맞게 성장하기만을 바란다.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전파사 주인이나 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제 웃기지가 않는다. 결국 현재의 침체된 e스포츠 산업이 일어서기 위해선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 협회는 자신들의 밥그릇보다 성장하는 프로게이머들을 돕는 것에 더 열정을 쏟아야 한다. 선수들 또한 게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더불어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긍정적인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팬들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멋진 전략과 역전승으로 환호를 이끌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회 및 리그를 주최하는 쪽에서는 이 산업을 제한된 이벤트가 아니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노력도 없이 팬들이 그저 자신들에게 시간과 관심을 쏟아주기만을 바란다면, 게임의 제작사가 직접 주최한다 해도 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다. 현재의 e스포츠 시장은 아직 안심할 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게임이나 선수들의 실력, 경기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라 임요환 감독의 팀 ‘슬레이어즈’의 해체 사건처럼 게임과 관계없는 시스템이나 내부적인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온게임넷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명심하자. 블록을 차례대로 쌓는 것은 어렵지만, 이 하나가 빠져 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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